북조선

비운의 왕세자 김정철, '마이웨이' 부르며 눈물"

백삼/이한백 2018. 5. 24. 10:16
평양 서기실 뒤흔든 태영호의 ‘런던 61시간 비망록’

 
북한 김정은 권력의 베일 하나가 벗겨졌다. 동생 때문에 후계 자리에서 밀려난 뒤 은둔해온 김정철 얘기다. 여동생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의 핵심 측근 실세로 활발한 공개 활동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정철은 권력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 그를 세상에 끌어낸 건 탈북·망명한 엘리트 외교관이다. 김정은의 비서 조직인 노동당 서기실에까지 파장을 던진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증언을 토대로 ‘비운의 왕세자’ 김정철의 감춰졌던 삶을 들여다본다.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팝 공연 보러 영국 찾은 김정철
동생 김정은 서기실이 일정 챙겨

한 밤 도착해 “음반 가게 가자”
전자기타 구하려 100㎞ 달려가

호르몬계 질환설은 근거 없는 듯
‘마이웨이’ 부르며 눈물 흘리기도

  
“런던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음반 판매점만 생각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김정철(37)은 대기하던 북한 대사관 차에 오르자마자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있는 HMV(영국 최대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체인점)로 가자”고 했다.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며 ‘내일 오전에 가보자’는 대사관 측 권유에 김정철은 “문을 두드리던지 전화를 하면 되지 않냐. 외교관이 부탁하면 주인이 나오지 않겠나. 그만한 인맥도 없냐”며 다그쳤다. 공항에서 런던 시내까지 2시간은 걸린다는 말에 김정철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호텔로 향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철을 첫 대면한 태영호(56)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서방 음악에 매료된 광적인 팬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식으로 나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가 김정철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5월 19일이라고 한다. 이튿날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시작된 세계적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 관람을 위해 김정철은 모스크바를 경유해 영국에 왔다. 태 전 공사는 최근 펴낸 책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담고 있다.
 
김정은 혈족을 의미하는 소위 ‘백두혈통’인 김정철의 런던행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다. 두 달 전인 그해 3월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의 서기실을 통해 비밀 지령이 내려졌다. “수령의 신변 안전과 관련되는 특별사항”이란 암호전문을 통해 공연장의 가장 좋은 좌석을 예매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4월 말엔 차관급 선발대가 현지에 도착해 준비작업을 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이 김정철을 안내하고 통역까지 맡게 된 건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 국제부 8과(통역 담당) 소속으로 김정은 전담 영어 통역을 맡은 김주성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철의 런던 체류 61시간은 음악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런던의 유명 악기상가인 덴마크 거리에 들어선 김정철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김정철은 상점에 놓인 기타를 골라잡아 즉흥 연주도 했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상점 주인이 “앨범을 낸 적이 있는가”라고 궁금해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수행원에게 ‘평양에서도 (김정철이) 기타를 치는가’라고 묻자 “밴드를 조직해 내부 공연을 자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릭 클랩턴 열성 팬인 김정철의 면모는 공연장 안팎에서 확인됐다. 김정철은 입구 매대에서 티셔츠와 컵·열쇠고리·앨범 등 기념품을 다량 구입했다. 공연에 도취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고, 너무 흥분해 주먹을 쳐들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온 뒤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듯 술을 먹었고 수행원들의 미니바까지 비웠다.
 
서방 언론에 노출된 뒤에도 김정철은 한 차례 더 공연관람을 강행했다. 그는 “여기까지 와서 기자들 무서워 공연을 보지 않고 돌아가겠는가. 무조건 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공연장에 영국 당국이 경호원을 투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져야 했다.
 
런던 체류 당시 김정철은 특정 브랜드의 미국산 전자기타를 꼭 사고 싶어 했다고 한다. 결국 100㎞ 떨어진 지방 도시의 대형 악기 판매점까지 찾아갔다. 가격은 2400파운드(우리 돈 350만원)였다. 간절히 원하던 걸 손에 넣은 김정철은 기타를 꼭 껴안았고, 그 자리에서 40분 가까이 연주를 했다. 그는 “이 기타를 사려고 여러 대사관에 전문을 보냈는데 왜 찾지 못했을까”하며 한탄하기도 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김정철은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품에 안고 있을 정도였다.
 
태 전 공사의 증언은 김정철과 관련한 비교적 소상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건 김정철이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 방문 때 그는 옥스퍼드 거리의 셀프리지백화점에서 아동복을 샀다. “여기까지 와서 아이 옷도 안 사가면 나쁜 아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싶다며 직접 들려 주문을 했고, 맛있게 먹었다. 술을 즐겼고 줄담배도 피웠다. 한때 후계 1순위에 거론됐지만 호르몬계 질환으로 여성처럼 목소리가 바뀌고 가슴이 불거져 탈락했다는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태 전 공사는 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정철의 목소리에 전혀 이상이 없었고, 외관으로 볼 때도 호르몬제 부작용 등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철에게는 아무런 호칭이 없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을 도와주고 있다면 일정한 직책과 호칭이 있어야 한다”며 “내가 본 김정철은 음악과 기타에만 미쳐있는 사람이며, 김정일의 아들이자 김정은의 형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여동생 김여정(29)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직함으로 서울을 특사 방문하고, 김정은 방중에 수행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태 전 공사의 책 발간에 발끈한 건 김정철의 신상은 물론 김정은 서기실의 내막이 폭로된 데 따른 불만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친형이 서방 문화에 빠져 있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즐긴다는 등의 대목은 북한 정권의 치부란 점에서다. 대북 소식통은 “서기실 책임자인 김창선 실장이 자신에게 질책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선수를 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태영호 전 공사를 비롯한 탈북 인사를 ‘인간 쓰레기’로 폄하하고, 이들의 대북비판을 ‘판문점 선언 위반’ 이란 논리로 꿰맞춰 가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런던을 찾은 김정철은 차량 이동 중 태영호 전 공사가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부르자 흥이 나서 따라 불렀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절대권력을 거머쥔 동생 김정은이 걸림돌로 여긴 이복형 김정남을 어떻게 무참히 살해하는지 김정철은 목도했다. 그의 눈물은 권력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야 하는 회한일 수 있다. 세계적 팝 아티스트의 공연장을 찾아 숨바꼭질해야 하는 폐쇄국가 북한의 현실을 절감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정철의 마이 웨이는 좀체 끝나기 어려워 보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