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ebs 역사특강 병자호란 2강 한명기

백삼/이한백 2013. 12. 4. 11:20

역사학  한명기교수강의

임진왜란당시 조선주변의 국제정세를 잘 설명해주는 강의

이강의를 듣고 거의 충격을 받았다. (조선,일본,명,후금을  전부 이해해야 되는데 그관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음에 통감한다.

http://ebs.daum.net/historylecture/episode/24486 원본주소

 

(참고관련주소.광해군 http://ebs.daum.net/especial_3/episode/4306)

 

 

ebs 역사특강 병자호란 2강 한명기

 

 

 

방송일 2013.10.10  |  재생 736 시청자게시판

역사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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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발해 멸망 후 고려와 거란에 예속되어 있던 여진족은 아골타를 수장으로 1115년부터 금나라를 세워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234년 몽골, 남송 연합군의 공격으로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였고 여진족은 또다시 동북지역에서 유목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명나라 초기 여진족은 야인여진, 해서여진, 건주여진 세 부족으로 나뉘어 생활하였는데, 명나라는 과거 금을 세웠던 아..
<여진족>
발해 멸망 후 고려와 거란에 예속되어 있던 여진족은 아골타를 수장으로 1115년부터 금나라를 세워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234년 몽골, 남송 연합군의 공격으로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였고 여진족은 또다시 동북지역에서 유목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명나라 초기 여진족은 야인여진, 해서여진, 건주여진 세 부족으로 나뉘어 생활하였는데, 명나라는 과거 금을 세웠던 아골타와 같은 새 지도자가 등장을 우려하여 위소를 설치해 여진족을 견제하였다.

1583년 건주여진 부족장 왕고가 명나라의 심양을 공격하였고, 그에 따른 명나라는 이성량의 군대를 파견하였다. 왕고(건주여진)는 해서여진으로 도주하였으나, 해서여진은 이성량에게 왕고를 넘겨주어 그는 북경에서 능지처참을 당한다. 왕고의 아들 아타이(건주여진)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해서여진을 공격하였고 다시 파견된 명나라 이성량의 6만의 군대에 밀려 아타이는 고륵채라는 성에 포위당하게 된다. 같은 여진족인 누르하치(건주여진)와 그의 아버지 타쿠시, 그리고 할아버지 교창가는 명나라 이성량에 대한 충성으로, 명나라 편에 참전하였다. 아타이의 아내와 사촌이었던 타쿠시와 교창가는 아타이에 항복을 권유하러 고륵채로 나서지만, 명나라 진영에서 날아온 총을 맞고 타쿠시와 교창가는 사망한다. 누르하치는 부조피살의 대가로 명으로부터 교역 칙서 30통과 말 30필을 배상금으로 지급받았고 그 칙서를 이용하여 산삼, 모피, 진주의 유통로를 장악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1588년 누르하치는 부를 이용해 군사력을 키워 부조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명나라를 공격 하였다. 누르하치는 압록강까지 계속해 세력을 넓혀나갔다.

그 당시, 일본을 통일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공격해왔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누르하치는 조선이 원하면 임진왜란에 원병 파견을 지원해준다고 제안했지만, 여진족을 오랑캐로 여겼던 조선은 누르하치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조선은 그 이후 계속해서 누르하치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 된다.

1608년, 왕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남긴 피해 문제와 계속되는 주변국들의 위협 속 과제를 안고 있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만력제가 보내준 원병에 대한 조선의 보은을 원하고 있었고, 누르하치 세력도 계속된 압박을 가하였다. 이러한 계속 된 명과 청(후금)의 위협 속에서 조선은 어떠한 대안과 대책을 가지고 위기에 대처했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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