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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화 총재 |
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기다려야지 욕심을 부리면 안되는거죠.”
손영화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49·사진)는 로타리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CEO다.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그의 후덕하고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가 큰 몫을 차지한 게 사실이다.
연기, 공주, 금산, 논산, 부여, 서천, 대전지역 58개 클럽 2136명 로타리언들이 봉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손 총재는 “1년 총재 임기 동안 회원들이 많이 도와줘서 보람이 크다”고 전했다.
오는 30일과 5월1일 유성 레전드호텔과 엑스포아트홀에서 열릴 지구대회를 앞두고 요즘 손 총재는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만 18년동안 로타리 활동을 해 온 그는 로타리 모토인 소아마비 박멸이 올해 안에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지난 19일 라이온스회원들과 함께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식장산 등반 봉사를 추진했던 손 총재는 로타리와 라이온스가 함께 힘을 모아 봉사 작업을 했던 것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손 총재는 이와 함께 “국제로타리에서 17개 지구 30명의 대학생에게 외국 유학비를 전액 지원하는 등 매년 인재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각 클럽마다 불우시설과 자매결연해 매년 숨은 봉사를 많이 하고 있어 뿌듯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선친 손기철 회장(향촌학원 설립자)도 대전로타리클럽 회장으로 활동했으니 로타리클럽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활성화된 뉴대전클럽 회장으로서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가 된 그와는 부자간 로타리언이 된 셈이다. 로타리언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갖게 되는 호가 ‘벽파’인 손 총재는 “큰스님이 ‘푸른 파도’와 같이 살라며 이런 호를 지어주셨다”고 말했다.
총재를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외국의 경우 여성 총재도 많은데 비해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구와 인천의 경우 여성 총재가 있으나 3680지구에서는 논산, 조치원, 부여 등 3개의 여성 클럽만이 존재하고, 그나마 대전에는 여성클럽이 아예 없다는 점이 가슴에 걸린다.
그러나 대전에 있는 학교 중 유일하게 전교조가 없는 동산중고교만 봐도 행촌 학원 이사장인 손 총재의 CEO로서의 자질과 덕목이 어떠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손 총재는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은 기쁘고 기분 좋은 일”이라며 “1년을 마무리하는 30일 지구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일본 지구와의 자매결연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약력
▲56년 대전생 ▲보문고, 단국대 사범대 한문교육학과 졸업 ▲대전동산중고교 서무과장 ▲학교법인 행촌학원 이사장 ▲대전시탁구협회장 ▲대전시체육회 부회장 ▲한국사학중고법인협의회 대전시지회장 ▲대전교육공동체 시민연합 공동대표
행촌학원 손영화 이사장, 국민훈장 목련장 포상
대전동산고등학교(교장 김광산)은 대전동산중,고등학교 설립,경영하는 학교법인 행촌학원 손영화(52) 이사장이 국민교육 유공 정부포상 대상자로 확정되어 지난 4일(금) 오후 3시 정부종합청사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전수받았다고 밝혔다.
손이사장은 1994년 10월 26일 학교법인 행촌학원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 이후 대전동산중,고등학교 교육시설 현대화 및 교육시설 확충에 13억원을 사비로 지원하는 등 지속적인 교단지원 사업으로 국민교육발전 및 후진양성에 매진하여 이번에 상을 수여받았다.
손이사장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대전시탁구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1999년 대전동산중,고등학교 복싱부, 탁구부 창단을 적극 지원하며 사비로 운동부 전용차량 2대(시가 2천5십만원)를 기증하여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였으며, 2006년부터 한국 중,고등학교 탁구연맹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 청소년 체육활성화에 일조 하였다.
또한, 2003년 7월부터 (사)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대전시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대전사학연합과 교원노조와의 단체교섭을 2007년 전국최초로 타결토록 적극 지원하는 등 대전중등사학의 자주성을 제고하고 사학정신 함양으로 국가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2004년 7월 1일부터 2005년 6월 30일까지 국제로타리3680지구총재를 역임하면서 인간존엄성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각종 국내외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재단에 기부와 봉사하는 활동으로 사회모범이 되고 있다.
대전동산중학교, 교훈탑 제막
- 근면, 지성, 단결 교훈 마음에 새겨 -
대전동산중학교(교장 최재호)는 지난 25일(금) 개교 42주년을 맞아 교훈탑을 건립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이번 건립탑은 학교법인 행촌학원의 초대 이사장인 故손기철님의 건학이념을 해촌 원문희 선생의 글씨로 오석에 담은 것으로 이날 제막식에는 김태훈 대전시 의원을 비롯, 학교운영위원장과 학부모회장단, 총동문회장, 손정자 前교장, 기증자인 엔젤종합건설 임승환 사장등 내외빈이 함께 참석, 그 의미를 더욱 빛냈다
동산중은 ‘근면’,‘지성’,‘단결’을 교훈으로 이제 학생들이 돌탑에 새겨진 교훈을 매일 등하교시간에 바라봄으로써 교육이념을 마음에 더욱 깊이 새길 수 있게 됐으며,
늘 새로움을 추구하여 내일의 삶을 풍요롭게 열어가는 창조적이고 ‘근면’한 사람, 바르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정의롭고 열성을 다하는 ‘지성’의 사람, 강한 신념과 높은 이상으로 자아를 실현하여 나라와 겨레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화합·‘단결’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동산중학교의 교훈이 교훈탑과 함께 학생들의 마음속에 매일매일 새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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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화(57·사진) 학교법인 행촌학원 이사장은 골프를 배울 때 제대로 배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골프를 배운 손 이사장은 골프채를 잡은 지 25년이 됐지만 여전히 흔들림 없는 스윙을 구사하며 ‘왕 싱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그가 골프를 배운 때는 1988년 6월. 골프를 함께 시작하자고 했던 매형이 약속을 어기고 몰래 골프를 먼저 시작한 것을 나중에 알았다. 매형이 미안하다면서 그에게 국산 골프채 세트를 선물했다.
손 이사장은 부친(손기철·1994년 작고)이 설립한 대전 동산중·고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했고 매형은 이 학교 교장이었다. 이때만 해도 자수성가로 학교를 설립했던 부친이 ‘골프는 사치운동이다’며 완고하게 반대하던 터여서 그는 매형의 도움으로 몰래 골프 연습장을 다녀야만 했다.
당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소속 김홍식 프로에게 3개월을 배웠다. 김 프로는 처음 한 달 반 동안 7번 아이언만 갖고 ‘똑딱이 공’만 칠 것을 주문했다. 그래도 골프가 재미있었다. 두 달 정도 지나 매형과 처음 유성골프장에 가 104타를 쳤다. 주변에서 잘 친다고 했다. 사실 그는 연습장을 3개월 다니면서 미련스러울 만큼 프로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1995년 담배를 끊자 6개월 만에 체중이 10㎏ 이상 불어 지금까지 90㎏다. 사람들이 다소 뚱뚱해 보이는 체격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스윙에 놀라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이럴 때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잘 배운 덕분”이라며 “기초를 잘 잡아야 하는데 처음에 힘들더라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생 가야 할 운동이기에 첫 단추를 잘 끼우듯 기초를 정확히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후 연습장에는 거의 가질 않는다.
골프를 배운 지 1년6개월 만인 1990년 5월 유성골프장에서 처음으로 79타를 쳐 ‘싱글’에 진입했다. 이때까지 라운드 횟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학창시절 취미로 시작한 탁구가 30대 이후에 시작한 골프에도 큰 도움이 됐다. 탁구를 해서 손과 팔, 몸의 놀림이 좋았다. 친구들과 취미생활로 탁구를 배운 것이 인연이 돼 고2 때까지 탁구선수를 했다. 당시 같은 또래였던 박일순 씨는 선수를 거쳐 탁구협회 전무까지 했다. 30대 초반에 골프를 배운 그는 이후 다른 운동은 거들떠보질 않았다. 그의 골프실력은 탁구인 중에서도 ‘빅3’로 통할 만큼 인정받고 있다. 요즘도 탁구계 골프 1인자로 불리는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과 스크래치로 대결을 벌일 정도다.
1994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부터 ‘주말골퍼’ 신세를 벗어나 주중에도 마음껏 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의 비거리는 210m 정도지만 풀스윙을 하지 않는다. 7번 아이언을 140m 정도 보내는데, 이 역시 풀스윙을 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근래 들어 골프의 참맛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골프는 거리의 게임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우쳤다. 장맛처럼 오래할수록 정교한 골프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베스트 스코어는 충북 청원의 실크리버골프장에서 기록한 4언더파 68타. 2006년 제주 오라골프장에서 70타를 쳐 첫 언더파 기록을 경신한 것. 2008년 부처님 오신날 오전에 가족과 함께 절에 다녀온 뒤 오후에 골프를 쳤다. 이날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기록했다. 말 그래도 이날은 ‘그분이 오신 것’처럼 치면 붙고 치면 들어가고 하는 식이었다. 가족들은 평소 잘 치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잘 칠 줄은 몰랐다며 깜짝 놀랐다.
그는 그해 자신감을 얻어 처음이자 유일하게 클럽챔피언전에 도전했다. 그는 예선 18홀을 통과해 16강에 진출했지만 매치플레이 경험이 없어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는 행운의 홀인원을 딱 한 번 경험했다. 1999년 4월 13일 경남 부곡골프장 4번홀(파3·180m)이었다. 당시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였던 그는 4팀이 출전한 이날 모임에서 4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쳤다. 약간 잘못 맞아 좌측으로 가던 공이 둔덕을 맞고 방향이 꺾이면서 그린에 올라가더니 홀로 들어갔다. 정말 행운이었다. 모임 참석자 인원이 많다보니 그날 저녁을 사는 것으로 ‘홀인원 턱’을 해결했다.
그는 골퍼로서 소원 한 가지를 이뤘다. 꼭 한번 보고 싶었던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을 다녀온 것. 부부동반 여행상품으로 갔지만 TV 화면으로만 봤던 선수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타이거 우즈도 처음 봤고, 그린과 같은 페어웨이는 밟기조차 아까웠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마스터스의 관전 문화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규정상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반입하지 못해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올해는 여름휴가를 브리티시오픈 기간에 맞춰 스코틀랜드에 갈 계획”이라며 “또한 18홀 ‘올 파’ 스코어를 한 번쯤 기록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대전시탁구협회장을 10년 역임한 그는 한국중고탁구연맹을 7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그는 4년 전 코리아국제주니어오픈탁구 대회를 만들어 미래의 탁구 동량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인터뷰]손영화 학교법인 행촌학원이사장인성교육 통해 다음 세대 육성에 헌신
2018.3.14
▲ 손영화 학교법인 행촌학원이사장. |
동산고는 인성교육 실천 3대 학교
4년제 대학 진학률 높은 명문사학
중·고등학교 탁구 발전을 위해 헌신
국제로타리 총재 역임 참 봉사 실천
[대전경제=한영섭]“사랑하는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의 꿈과 끼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선 긍정적인 사고를 기르십시오. 둘째,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십시오. 셋째,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십시오”
손영화 학교법인 행촌학원 이사장(대전동산중·고등학교이사장)은 동산고등학교 2018학년도 멘토·멘티 결연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이 학교의 입학식은 2학년 선배들이 배석하여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특징. 선배들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고 신입생들을 따뜻하게 포옹하면서 환영해준다. 이는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고 새로운 교육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준비된 행사이다. 기존의 형식적인 입학식에서 탈피한 정감어린 입학식은 학생 학부모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이 학교의 전통은 가정과도 같은 따뜻한 학교 분위기 조성과 함께 더불어 학력 신장에 힘쓰는 분위기로 이어져 4년제 대학진학률이 매우 높은 명문 사학의 기초를 확고히 했다.
사실 동산중·고등학교는 대전토박이 행촌 손기철 제1대 이사장의 집안이 너무 어려워 소위 월사금을 내지 못해 배우지 못한 한을 후학들은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세워진 학교이다.
신탄진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손기철 1대 이사장은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에 성공, 자신이 맨 먼저 입사 원서를 냈으나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선발되지 못했던 충남농업기술시험장 자리에 1966년 동산중학교, 1979년 동산고등학교(당시 동일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현 손영화 제2대 이사장은 선친의 뒤를 이어 1994년 제2대 이사장에 취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교시절 잠시 탁구 선수로 활동했던 손 이사장은 대전 뿐만아니라 대한민국의 탁구 발전을 위해 헌신한 주인공이다. 지난 2006년 한국 중·고등학교탁구연맹 3대회장으로 취임한 손 이사장은 2016년까지 탁구 꿈나무 발굴은 물론, 세계적인 선수로 육성하여 대한민국을 탁구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또한 손 이사장은 국제로타리클럽3680지구 총재로서 남다른 열정으로 지구 발전에 헌신하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봉사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손 이사장은 후덕하고 부지런하며 열정적인 삶의 태도와 더불어 로타리언들이 봉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총재로 기억되며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열정적으로 활동한 흔적을 남기며 칭찬과 존경을 받고 있는 손영화 행촌학원이사장으로부터 동산중·고등학교와 탁구연맹, 그리고 국제로타리3680 지구 총재로서의 활동상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편집자 주>
-동산중·고등학교가 대전의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8학년도에도 많은 졸업생이 명문대학에 진학했는데요, 먼저 행촌학원 이사장으로서 소감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제가 행촌학원 이사장이지만 학교 운영은 전적으로 교장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학생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대학교에 4명이 합격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며 많은 분들이 축하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또한 동산고등학교는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아 부러움의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좋은 소문과 칭찬은 전적으로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교육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열심히 가르친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과 이에 잘 따르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공립과 사립이 다른 것은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은 자주 학교를 옮기며 가르치지만 사립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거의 모두 정년 때까지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애착을 갖고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저희 동산고등학교에는 좋은 자질과 소양을 갖춘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분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 좋아하는 학과에 진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 학년이 졸업하면 새로운 학생들이 또 들어옵니다. 이렇게 동산고등학교에서 배운 1만 5000여 명의 동문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문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1994년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요, 그간의 학교 발전사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행촌학원은 지난 1966년 선친이셨던 손기철 이사장님이 설립, 같은해 동산중학교를 개교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는 1978년 12학급으로 처음 설립인가를 받아 1979년 개교하여 같은해 18학급, 1986년에는 24학급으로 학칙이 변경되었으며 1991년에는 30학급으로 규모가 더욱 커졌습니다.
1994년 제가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1997년에는 36학급으로 학칙을 변경하였고 2001년에는 행촌체육관을 준공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2010년에는 자율학교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학생식당인 행촌관을 건립하여 학생들이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탁구부의 산실인 행촌체육관은 1층 1532.3㎡, 2층 214.99㎡ 등 총 2747㎡의 규모로 건립 당시 국비 6억 원을 지원 받았으나 그 재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적잖은 사비를 들여야 했습니다.
이후 행촌체육관은 운동부는 물론, 입학식과 졸업식 등 각종 학교 행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1966년 동산중학교를 개교하고 1979학년도에 동산고등학교의 문을 열었는데 초대 이사장인 손기철 선생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는지요?
일제시대인 1919년 충남 대덕군 북면 문평리(현재의신탄진동)에서 태어난 선친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습니다. 선친의 배우지 못한 한이 행촌학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가 되었지요.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친은 집안 어른의 소개로 현재 동산중학교 자리에 있던 충남농업기술시험장의 직원 채용에 응시했으나 경험이 없고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사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전역을 우연히 지나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자전거 상회의 직원모집 광고를 보고 자전거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8.15해방과 더불어 그 자전거점을 인수하여 ‘대전자전차상공업’이라는 이름으로 개업, 사업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가 대표적인 이동수단이었으므로 나름 크게 번창하여 대전자전차상공업회장과 전국자전차조합회 충남도 지부장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에 대원자전차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전국자전차도매상협회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자전거 사업을 정리하고 계룡버스를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자수성가한 선친은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잊지 않고 배움의 터전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셨습니다. 당시 대전시 정동에 대전농업학교가 있었는데 자금난으로 어려워지자 운영을 제시해와 이 학교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리가 비좁아 더 이상 확장이 어려워 찾아낸 곳이 바로 처음 대전에 나와 직원 채용에 떨어졌던 충남농업기술시험장이었습니다. 서대전역옆 유등천 행촌골, 현재의 동산중학교 자리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대전농업학교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선친의 호가 행촌이 된 것도 바로 이곳의 지명 때문이지요.
이후 학교법인 행촌학원의 설립 인가를 받은 것은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1966년 11월이고요, 동산중·고등학교 부지 2만3374㎡를 비롯해 건물 등을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설립하였는데 거의 모든 재산을 학교 설립에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당시 선친께서는 학교 설립에 들어간 비용이 서대전사거리에서 수침교까지 한쪽 땅을 살 수 있는 재원이 들어갔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친께서 어렵게 자수성가를 이루시고 자신과 같이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게 하기 위해 학교를 세워 미래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될 동량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일 자체만으로도 저는 저의 선친을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추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산 중•고등학교만의 특별한 교육이 있다면
저희학교는 인성교육 실천학교 3대학교입니다. 인성교육은 전국에서 가장 앞선 학교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인성교육 100대 학교에 뽑혔고, 다시 10대 학교, 그리고 3대학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저희 학교에 재직하고 계신 선생님들 모두가 심성이 착하시고 소양을 갖추신 분들입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도 모두가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이라든가 선생님 권위에 맞서는 일 등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옛 계룡대 육군지원단(현 계룡대 근무지원연대)과 자매결연으로 매년 졸업식 때 군악대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군악대 의장대 시범을 보이는 등 ‘나라사랑 음악회’를 개최했습니다. 지난해는 평택 2함대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가졌는데 버스 10대를 동원, 참관시킨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학생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양하고 군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시킴으로써 몸과 마음이 건강한 균형 잡힌 인재로 양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지역의 탁구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탁구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2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1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대학 진학을 위해 탁구를 포기하게 됐으나 선수생활을 계속한 친구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탁구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특히 선수생활을 같이 했던 박일순 대전시체육회 부회장의 영향으로 1996년도에 대전시 탁구협회장을 맡아 10여 년간 역임했고 2006년부터 한국중·고등학교 탁구연맹 회장을 하면서 우리 나라 탁구 발전을 위해 나름 열심히 뛰었습니다.
실제로 중·고학생의 탁구실력 향상을 위해 ITTF KOREA JUNIOR & CADET 오픈 국제탁구대회를 비롯해 전국남녀 중·고학생종별탁구대회, 회장기 전국남녀중·고학생탁구대회, 전국남녀 중·고학생종합탁구대회 등을 개최해 마음 것 기량을 발휘하도록 사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또한 당시 대전에는 탁구부가 초등학교에 1개팀, 중학교에 1개팀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한 팀 더 창단하자는 체육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또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향상은 물론, 저변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 동산중에 탁구부를 창단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는 선수자원이 없었으므로 천안의 초등학교 팀에서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여 우여곡절 끝에 탄생시켜 오늘의 동산중·고학교 탁구부로 이어져 전국을 호령하는 실력있는 선수들을 양성하는 산실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동산고등학교탁구부는 전국체전에서 무려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우리 나라 탁구 역사상 단일팀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이로서 전국체전 최우수팀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를 역임하셨는데 국제로타리클럽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요?
국제로타리클럽은 선친께서 대전로타리클럽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로타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클럽에 가입하여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1981년 대학을 졸업하고 뉴대전로타랙트 클럽에 입회하였습니다. 로타리클럽에서 지원하는 로타랙트는 대부분 대학생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저희 클럽만 유일하게 직장인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로타랙트 활동을 하다보니 로타리안들도 자주 접하게 되었으며 1987년에는 뉴대전로타리클럽에 31세에 입회하여 지난해 4월로 만 30년을 로타리안으로 활동했습니다.
제 나이 49세 때인 2004년에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를 역임하였는데 이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젊은 나이의 총재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에는 의욕도 넘쳤고 또 하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대전·충남 라이온스 클럽과 함께 봉사활동을 벌였는데, 청각 및 지체장애인들과 함께한 식장산 등반대회는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모두가 정상에 오른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또 필리핀 농촌 마을에 봉사를 가서 농기계를 전달한 일이 있는데요, 그리 금액도 크지 않았고 새 기계도 아니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게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봉사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로타리클럽에서 1985년부터 시작하여 로타리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05년까지 전세계에서 소아마비를 완전 박멸시키겠다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돈도 들어갔고 실제로도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아마비가 박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시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와 너무 오지여서 들어갈 수 없는 지역 등 현재 2개 국가에는 소아마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골프에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골퍼들에게 조언하신다면.
하하하... 제가 골프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고 또 제가 조언을 할 만한 실력도 아니고요, 다만 기본에 충실한 선수가 잘하는 선수 아닐까요?
-특별히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구절이나 인생의 멘토는 어떤 분인가요?
제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중 하나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입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려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정말 운이 좋아 뜻하지 않게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므로 앞으로 살면서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이 어려서부터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글귀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분 가운데 홍성표 전 대전시교육감님을 좋아합니다. 홍 교육감님이 교육감에 오르셨을 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였습니다. 저는 행촌학원 이사장으로서 이따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또 대전경찰발전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하실 때 제가 사무국장을 맡아 가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등을 방문하면 손에 꼭 책을 들고 계셨고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데 그러다 보니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안목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제가 닮고 싶은 분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또한 타인을 폄하하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폄하하면 자신만 이상해지고 작아지므로 항상 상대의 편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조언하십니다. 저한테 이렇게 말씀해 주신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앞으로 가능한 한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여 홍성표 전 교육감처럼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후학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제 일이 아닌가 합니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면 경쟁력 있는 훌륭한 개인은 물론, 학교 역시 좋은 학교란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 개인이 건강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며 백성도 편안해지는 그런 나라가 속히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드시 잘되는 기업은 있게 마련입니다. 21세기는 개성있고 창조적인 사람들의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뒤따르기 보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실천해 나갈 때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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