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지금 북한을 흔들고 있는 건, 女子"

백삼/이한백 2017. 4. 11. 10:20
['북한 녀자' 연구서 낸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생활력 억척같은 북한 여성, 가정에선 의외로 순종적인 듯..
1990년대 이후 市場化 주도.. 남자 압도하며 체제 변화시켜"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시집가면 다 먹여 살려야 되거든요. 배낭 메고 여행 다니면서 '사세요, 사세요' 한다든가. 아우, 전 그런 것 못 해요. 그러니까 처녀로 있는 게 더 좋거든요."(30대 탈북 여성) "(많은 남자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위인 여자, 어지간히 생활에 경험이 있는 여자한테 붙어서 산단 말입니다."(40대 탈북 여성)

15년 동안 1000명 넘는 탈북 여성들을 인터뷰한 박영자(47)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의 최근 조사에선 여성이 사회·경제적으로 남성보다 우위에 서는 북한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탈북민의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수치에서 보듯,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체제 변화의 역동적인 주체 역시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박 위원이 최근 낸 연구서 '북한 녀자―탄생과 굴절의 70년사'(앨피)는 분단 이후 북쪽의 여성들이 젠더(gender·사회적 性)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거대한 역사를 추적한 600여 쪽 분량의 연구서다. 그는 "탈북 여성을 만날 때마다 두 번 놀라게 된다"고 했다. "처음엔 무척 자기주장이 강하고 생활력이 억척같아서 감탄하죠. 그런데 가정에선 또 그렇게 순종적일 수가 없거든요." 그의 책은 이 질문을 풀기 위한 긴 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1945년 분단 직후부터 북한 정권은 양성평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여성해방은 노라(헨리크 입센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처럼 집을 나가서는 안 된다"며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그 노동력을 끌어내려 했다. 안 그래도 전통적으로 억센 기질이 강하던 북녀(北女)들이 공장과 탄광 같은 산업 현장에 대거 투입됐다. 그러면서 가정에선 '혁명 전사를 키우는 어머니'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생활력이 일취월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종적'이라는 면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다른 곳과는 달리 '싸우는 여성해방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박 위원은 말했다. "처음부터 '위로부터의 여성해방'이었기에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권위에 대한 순종 의식이 생겨났던 겁니다." 마치 총알 피했더니 대포알 날아들듯, 집안의 가부장제 질서에서 일시 벗어났지만 더 큰 '국가 가부장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더구나 북한의 여성 정책은 이후 여러 차례 굴절을 겪어야 했다. 1960년대엔 생활경제 책임자이자 '혁명'하는 남편의 보조 역할을 맡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다시 남성 아래로 낮아졌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여성들은 가정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고, 시장화를 주도하며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게 됐다.

2004년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 위원은 1999년 교환학생으로 간 통일 직후의 독일에서 '제도는 바뀌어도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치 분야 위주인 북한 연구 풍토 속에서 '사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그는 "남한 여성이 관계 맺기와 처세술에 뛰어나다면, 북한 여성은 경제적 위기 극복 능력이 더 탁월한 것 같다"며 "현재 북한 내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변화가 여성을 중심으로 꾸준히 일어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