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은 예편하기 직전 박준병 보안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시키고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보안사령관의 대장 진급을 축하하면서 보안사 앞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부터 노태우, 전두환, 박준병. 뒷줄 오른쪽 두 번째는 김진영 대령(전 육군참모총장)
대령 시절 육군본부에 근무하게 되면서 모처럼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근하는 박준병 대령을 배웅하는 가족들. 맨 뒤가 아내 김혜정.
1995년 10월 14일 자민련에 입당한 박준병(오른쪽에서 두 번째) 의원이 김종필(왼쪽에서 두 번째) 총재의 환영을 받고 있다. 왼쪽은 박철언 부총재, 오른쪽은 한영수 원내총무
자민련 시절 박태준 총재와 박준병 사무총장.
대장 박준병 22代 국군보안사령관 (81. 7.14 ~ 84. 7. 6)
박준병(朴俊炳, 1933년 6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이다. 본관은 태안(太安)이고 충청북도 옥천 출생이며 호는 청산(靑山)이다
- 충청남도 대전고등보통학교 졸업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2기
- 서울대학교 사학과 졸업
- 대한민국 육군대학교 졸업
- 국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 (인문과학 석사)
- 1979년 육군 제20사단장.
-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 1981년 육군 보안사령관
- 1984년 육군 대장 예편.
- 1985년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 1988년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 1992년 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
- 1995년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6·25 당시 자원입대해 위생병으로 근무하던 중 모교를 찾아가 교복 차림의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이 박준병. |
2000년 | 자민련 충북 보은.옥천.영동지구당 지구당위원장 | |
1999년-2000년 | 자민련 부총재 | |
1998년 |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 |
1998년 | 고위국정운영협의회 위원 | |
1998년-1999년 | 자민련 사무총장 | |
1995년-1996년 | 자민련 국회의원 | |
1994년 | 국회 내무위원회 위원 | |
1993년 | 아시아.태평양 환경의원회의 초대의장 및 집행위원장 | |
1992년-1994년 |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위원 | |
1992년 | 민자당 당무위원 | |
1992년 | UN환경개발회의 국회대표단 | |
1992년 | 제14대 국회의원 | |
1990년-1990년 | 민자당 사무총장 | |
1990년 | 민정당 사무총장 | |
1989년 | 한국아동인구개발의원연맹 회장 | |
1988년-1988년 | 민정당 사무총장 | |
1988년-1992년 | 제13대 국회의원 | |
1987년-1987년 | 민정당 중앙집행위원 | |
1987년-1988년 |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위원장 | |
1987년 | 한원장학회 이사 | |
1986년 | 한.호의원친선협회 회장 | |
1985년-1987년 | 민정당 국책조정위원장 | |
1985년-1988년 | 제12대 국회의원 | |
1984년 | 육군 대장 예편 | |
1981년-1984년 | 국군 보안사령관 | |
1975년 | 하사관학교 교장 | |
1960년 | 육군사관학교 교수 | |
1956년 | 육군 소위 임관 |
수상
년도 | l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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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훈장 국선장 | ||
보국훈장 통일장 | ||
보국훈장 천수장 | ||
화랑무공훈장 | ||
충무무공훈장 | ||
대통령표창 |
저서
년도 | l | 제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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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일등병에서 대장까지 |
박준병(朴俊炳)은 1933년 6월 21일(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를 다니다 6ᆞ25전쟁이 터지자 사병으로 자원입대, 참전했다. 병장 계급으로 육군사관학교(12기)에 입학, 1956년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관했다. 1958년에는 군 위탁교육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했다. 육사 동기 가운데 선두그룹으로, 1975년 장군 진급과 동시에 제3하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보병 제20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등 요직을 거처 국군보안사령관(육군 대장)을 마지막으로 1984년 7월, 34년간의 ‘군인의 길’을 영예롭게 마감했다. 예편 후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 국제정치학 객원 연구원이 되었다. 1984년 9월 귀국하여 고향인 충북 보은, 옥천, 영동군의 민정당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전국 2위의 득표율로 당선함으로써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3선에 성공하는 동안 민정당 국책조정실장과 사무총장, 민자당 사무총장 및 당무의원, 자민련 부총재 겸 사무총장 등 중책을 맡아 국정에 참여한 뒤, 2002년 12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정치인의 길’에서 물러났다. 화랑무공훈장을 비롯하여 보국훈장 천수장, 통일장, 국선장을 받았으며 저서에 『이등병에서 대장까지』가 있다. 현재 서경대학교 석좌교수, 태안박씨 종친회 회장.
박준병 전국회의원 한민구 합참의장 박종명 기념촬영
충북 옥천출신으로 육사 12기를 졸업한 정치군인의 그룹인 하나회 출신으로 전두환의 12,12 사태에 당시 20 사단장으로 참가하여 정승화 총장 연행에 가담.
보안 사령관(대장)으로 예편 하여 민정당 사무총장 들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냈읍니다.
2013-08-04
'군 출신 정치인'. 박준병(81) 전 의원을 대표하는 말이다.
박 전 의원은 육사 12기로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해 각급 지휘관을 거쳐 최고계급인 대장으로 전역했다. 정계에서는 3선 중진의 경력을 쌓고 집권당 사무총장을 네 차례 역임했다. 34년간의 군인의 삶과 18년의 정치인의 삶을 종합해볼 때 이만하면 합격점이다.
지금은 서경대 석좌교수로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고 자족한다. 천성이 학구파로 늘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한 식당에서 박준병 전 의원을 만났다.
"내년 지방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직답을 피했다.
"사람 참 성격 한번 급합니다. 나는 정치계를 떠난 지 10년 된 사람이오. 이런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서 젊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라오."
기자의 정치적인 질문 공세에도 단련된 내공 덕분인지 침착하게 미소로 화답했다. 원하는 대답은 아니였지만 대신 자신의 근황을 2시간에 걸쳐 쏟아냈다. 그의 격정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실성과 넉넉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박 전 의원은 34년간의 군인의 삶과 18년의 정치인 인생을 되돌아 보며 그늘과 빛을 고루 경험했다는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
특히 '책임은 나에게, 영예는 상관과 부하에게'라는 군인 정신을 기본으로 살아왔다. 군 전역 후 정치권에 입문해서도 이같은 정신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했단다. 육사생도 시절에 몸도 익힌 명예제도를 잊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정 세력으로부터 배척받거나 가혹하게 견제당한 일이 없다. 5·18 재판 등 끔찍한 정치벌을 받았지만 무죄를 입증했다.
그의 화려한 배경과 능력이 그런 행운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전역했더라도 영원한 군인이라는 정신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는 국가에 빚진 사람이다"며 "국가가 없었다면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에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군인시절 국가를 위해 일했고, 정치인일 때는 지역을 위해, 지금은 현시대를 책임질 청년들을 위해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며 "정치계에 다시 발을 들일 생각은 없지만 내게 맡겨진 시대적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주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