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힘들고 어두운면

조영남 "작품의 90% 이상을 A씨가 그려줬지만 관행이다

백삼/이한백 2016. 5. 18. 13:51

A씨는 "예술가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다'고 말한 뒤 1년간 그림을 안 그려 준적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생활고에 장사가 없더라. 지난 7년 동안 난 인간 복사기였다"고 말했다.


조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고 주장한 무명화가 A씨의 작업실. 조씨로부터 주문받아 작업한 그림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시아뉴스통신=박시연 기자


◆ 10만원짜리 그림, '조영남 사인'달고 수천만원에…

조씨가 지난 3월2일부터 30일까지 전시회를 열었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팔레드 서울'. 전시회의 마지막 날인 30일 아시아뉴스통신 취재진이 A씨와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2층과 3층에는 조씨의 작품 4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한편에 놓인 탁자위에는 작품가격이 적힌 가격표도 있었다. 작품은 300만원에서 1200만원까지 크기 등에 따라 폭넓게 거래됐다.

전시장 관계자는 "조영남 선생님의 작품 같은 경우 인기가 좋고, 다양한 사람들이 구매해 간다"며 "이번 전시회에서도 많은 작품이 거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전시된 그림 중 상당수의 작품이 자신의 그림이라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화랑에 전시 돼 있는 작품 중 상당수는 조씨가 부탁해서 내가 그려준 그림"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내가 약 99% 정도 완성해서 전달한 그림이 약간의 덧칠과 조씨의 사인이 추가 돼 전시돼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A씨는 "작품이 이렇게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지 몰랐다"면서 "알았더라면 수백, 수천만원짜리 그림을 단돈 10만원에 그려줬겠냐"고 말했다.

취재진은 조씨의 작품이 거래되고 있는 서울의 또 다른 화랑을 찾았다. 기자가 조씨의 작품 구입에 대해 문의하자 화랑의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화랑 대표는 "우리 갤러리에서 2012년 조영남 선생님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 이후로 조영남 선생님의 작품을 거래하고 있다"면서 "작품은 200만원에서 3000원까지 다양하게 있다"고 설명해줬다.

해당 화랑에서 거래되고 있는 그림들도 대부분 A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한 작품들이었다.

◆ 전시회 기간, 인기 높은 그림 17점 그려줘…

최근 마지막으로 A씨가 조씨에게 그림을 그려 가져다 준 것은 지난 3월21일이다. 이날 오전 A씨는 자신의 작업실이 위치한 강원도 속초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해 저녁쯤 서울에 위치한 조씨의 집에 도착해 그림을 전달했다. 작품은 3~4가지 주제의 그림 17점이었다.

작품을 배달한 시점은 '팔레드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었다. 특히 이날 전달한 작품 중 '천경자 여사께'와 '겸손은 힘들어'작품은 '팔레드 서울' 관계자도 인기가 높아 많은 고객들이 찾는 그림이라고 설명한 작품이다.

A씨는 "새로운 그림을 내가 창조적으로 그려서 주는 것은 아니다. 조씨가 아이템을 정해서 알려주면 나는 그 그림을 똑같이 여러 장 그려서 조씨에게 가져다준다"고 했다.

즉 A씨는 조씨가 필요한 주제의 작품들을 의뢰하면 해당 작품을 똑같이 적게는 2~3점, 많게는 10~20점씩 그려서 전달하는 것이다.


조씨의 메니저가 A씨와 작품의뢰를 위해 주고 받은 문자 내용. /아시아뉴스통신=박시연 기자


◆ 의뢰는 매니저가 "빨리 그려서 보내주세요"

작품 의뢰는 조씨의 매니저가 문자나 전화로 한다. 원래는 조씨가 직접 전화를 했었지만 최근 바빠진 스케줄 탓에 매니저가 대신한다고 했다. A씨가 조씨의 매니저와 나눈 메시지 대화내용에는 그림을 의뢰하는 문구가 대부분이었다.

메시지에는 'M10호로 두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빨리 그려서 보내주세요', '위에 거는 옆으로 길게 밑에 거는 20호로 3개 부탁드립니다', '호수는 어제 얘기한 넙적한 사이즈입니다' 등의 매니저의 작품 의뢰 내용이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 전달을 위해 조씨의 집을 방문한 지난 3월21일 주고받은 문자내용도 있었다.

문자 대화에서 A씨가 '서울에 도착해 있네요. 오늘 저녁에 찾아뵐 수 있을지'라고 묻자 매니저가 '오셔도 됩니다'고 답했다.

◆ 조영남 "미술계 관행. A씨는 조수일 뿐"…검찰 수사 착수

조씨는 아시아뉴스통신과의 통화에서 "A씨는 조수일 뿐"이라며 "작품의 90% 이상을 A씨가 그려준 사실은 맞지만 그것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조씨는 A씨가 그린 그림 위에 추가 작업을 하고 서명을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미국에서는 조수를 100명 넘게 두고 있는 작가들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조수를 두고 작품활동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대 교수는 "남이 90%이상 그린 사실을 알고도 소비자들이 조영남씨의 작품을 구매했을지 의문"이라며 "다른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에서도 이와 같은 정황을 포학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검찰은 16일 증거 물품 등을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아 조씨의 소속사와 작품이 거래된 갤러리 등을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