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터 발굴 현장. 포항제철의 크레인 기사가 최병현 조사원(현 숭실대 명예교수)에게 소리쳤다. 30t 무게의 목탑터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을 대형 크레인으로 들어올리자마자 최병현과 동료가 그 아래로 들어간 것. 이들은 심초석 밑에 혹 유물이 묻혀 있는지 샅샅이 훑었다. 심초석을 옮겨서 내려놓을 때 잔존 유물이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워낙 무겁다 보니 크레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릴 정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동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79)의 입술도 바싹 타들어 갔다.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22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지 목탑 터에서 심초석 위에 놓여 있는 막음돌을 가리키고 있다. 막음돌은 고려시대 몽골 침입으로 황룡사가 불탄 뒤 심초석 내 사리가 들어 있는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경주=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22일 팔순에 가까운 김동현은 38년 만에 다시 그 자리에 섰다. 그는 지팡이를 짚은 채 약 8만 m²의 광활한 황룡사 터 한가운데 있는 9층 목탑 터로 서서히 걸어갔다. 심초석을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이윽고 입을 뗐다. “들어올릴 때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갑자기 3년 전 월지(안압지) 목선 사고가 머릴 스치더군요. 머리카락이 쭈뼛 섰습니다.”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1978년 황룡사지에서 발굴한 대형 ‘치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사실 당시 누구도 탑의 심초석 아래를 발굴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석탑 사리공에서 사리장엄구를 수습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구태여 무거운 심초석을 들어내 발굴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황룡사 터 심초석 발굴 때에도 일부 학자들은 사고 위험을 거론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동현의 생각은 달랐다. 탑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가장 아랫부분의 기초를 확인해야 한다고 봤다. “난 발굴에 들어갈 때 인문학적인 요소 이상으로 공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졌어요. 천마총 발굴 땐 소요 인력이나 흙, 돌의 양을 수치로 계산해 봤습니다. 정통 고고학자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이죠.”
심초석 아래는 그의 예상대로 적심석(積心石·초석과 함께 건물 밑바닥에 까는 돌)이 설치돼 있었다. 평평하지 않은 자연 지형에서 거대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신라인들의 지혜가 발휘된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유물의 존재였다. 심초석이 놓였던 자리를 10cm가량 파내자 청동거울과 금동 귀고리, 청동 그릇, 당나라 백자항아리 등 3000여 점의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탑을 세울 때 귀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를 부처에게 바친 공양품과 액땜을 위해 땅속에 묻는 예물인 진단구(鎭壇具)였다.
이것은 한국 고고학사에서 새로운 해석을 낳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금귀고리는 장례용 의례품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황룡사 공양품으로 발원자가 착용한 귀고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것이 신라시대 당시 실생활에도 쓰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게다가 이 귀고리는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 연도(645년)를 통해 시기가 확인되기 때문에 다른 신라 귀고리의 양식이나 편년을 비교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됐다.
1978년 7월 28일 무게가 30t에 이르는 황룡사지 목탑 터 심초석을 당시 포항제철에서 빌린 크레인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1980년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갔는데 지도교수에게서 ‘황룡사 발굴 현장에 압도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최고로 치는 황룡사 출토 유물은 높이 2m짜리 치미(용마루 양 끝에 올리는 장식 기와)입니다.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신라인들은 이 거대한 치미를 통째로 가마에서 구워 냈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 사찰은 나무로 짠 틀에 동판을 붙여 치미를 겨우 흉내 냈죠. 황룡사는 위대한 선조들이 남긴 압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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