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이씨 족보

증조부모. 조부모님 .아버지 어머님 삶의질곡 벌초

백삼/이한백 2013. 9. 17. 13:32

한석리 부모님 산소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우리조상님은 6대조부터 어내(한석리)에정착하게 됩니다

1742년경에 온양에 역병이돌아 장손은 살아 남아야 된다고하여 상주로 피난하던중 한약방에서 일하게됩니다. 어내서(한석리) 약초를상주한약방으로 팔려다니는 김영김씨아저씨가 있엇는데 한약방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참하고 성실해서  사위삼았다고 합니다. 한석리에 정착하게 됩니다.7대조위로 선산은 아산시 이순신현충사옆에 자리하고있습니다. 

증조부 희자칠자 내외분 합장묘/ 증조부1837년생 卒1877년4월8일 

配경주김씨1839년생 卒1877년4월23일 부군은40세 부인은38세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이돌아가시고 15일만에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두분께서는 죽어서도 함께뭍히셨습니다)

얼마나 애듯한사랑을 했는가 짐작이갑니다 다섯살짜리 아들을두고 남편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다섯살아들두고 떠나는 심정이 어때을까요??

고조부이상 조상님들은 종중에서 관리합니다.

할머니 민길동여사 부상리에서 시집을왔습니다 驪興(여흥)민씨  명성황후 집안입니다.

1877년생 卒1927년 4월28일50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나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많이받고 성장한사람들이 많은데 나 태어나기전 훨씬이전에 돌아가셨으니  ~~~

교자명자할아버지 5세때부모님은 여의고 작은아버지밑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희자구자)얼마나 외롭고 아버지 어머님이 그리웠을까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했을겁니다.1873년생  卒1944 5월12일해방을 한해 앞두고돌아가셨습니다  복통으로  돌아가셨는데 츠측은 위암이아닌가 싶습니다 71세까지 사시고 작은 할머니함께딸자식 낳고 오랫동안 행복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조실부모해서 어릴때고생한게 늘그막에는 조그이나마 보상을 받은 느낌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67세에 작은부인한테에 득남을 하셨습니다 . 얼마나 기뻐을까요 지금은 아마 상상할수없는일을 그때는가능했으리라 해봅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자손들이 현재는 대학교수 서너명 대기업계열사사장. 공무원. 프로운동선수 각종직업에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산소 아버님 주자호자1913년12월6일생 卒1979년11월25일  아버님은 글도 많이아시고 내어릴때는 영동장심천장용산장 다니시면서 경노당에서 시조읆고 톡 마작등을 많이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젊은이였을때는 황간면사무소 발령을 받았는데 할아버지께서 외지로나가는것을 반대를해서 안갔다고 합니다 일정시대에는 보급대 부역가는데 도망다니면서 끝까지 일제부역을 안했다고 합니다  6.25때는 동네이장을 보면서 인민군에시달려 외지로 떠돌다 왔다고 합니다.주욱 독자로만 이어지니 아들을 옆에두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67세에 내가 군대있을때 혈압으로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 정태경여사1920년8월6일생  延日(연일)정씨 卒2003년3월20일 황간면 서송원리 시집을 왔습니다 딸만 셋인집안에 장녀로 태어나서 어내로 출가 시집온지 얼마안돼 어내강이 범람을 했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궁금해서 황간에서 걸어서 박달산밑으로 은혜까지 딸을 보러왔답니다. 외할아버지 50세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우리집에서 살았습니다 장녀니까 아버지가 장모님을 모셨죠 .외할머니는 영동 상주 전지역을 돌면서 씨앗 장사를 하셨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머님도 젊었을때는 나무도 하고 아주고생만하시고 질곡의삶을 살았답니다. 4학년초등학교 다닐때 문경희담임할때 밤을 삶아서 선생님께 주셨던 기억이납니다 항상 자식잘돼라고 정지에서 소지종이 불사르며 기도하고했는데 그립네요.  ㅠㅠㅠ

좌청룡 우백호 명당~

시골의 큰형님 예초기 소리

뒷동산 소나무 어릴때하고 크기 푸르른솔잎 똑같습니다 우리만 세월이흘러 늙어만 갑니다

친구들은 부모님이 살아계신분들이 많을겁니다 하지만 나는 막내로 태어나다보니 부모님이 초등학교다닐때는50이 훌쩍넘었습니다.

그래서 더애틋하게 그리웁습니다 살아계실때 부모님께 효도 마니마니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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