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왕소군의 처지를 후세 당나라의 시인 동백규가 읊은 시에서 비롯 됩니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양가(良家) 출신 궁녀입니다.
한나라는 북방 강국 흉노(匈奴)와 화친하는 것이 절대 과제였기 때문에 원제는 기원전 33년 흉노의 호한사(呼韓邪) 선우(單于:황제)에게 왕소군을 주어 화친을 맺습니다.
그런 사연을 후한 때의 문신 동방규가 <왕소군의 원한(昭君怨)>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에는 화초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은 아니리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저절로 허리띠 느슨해졌지,
허리 날씬하게 하려던 것 아니라네
동방규가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 노래한 것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입니다. 그런데 춘래불사춘은 원래 봄이 와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향수(鄕愁)를 뜻한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