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조선과 한국의 국학(國學)에 대한 진솔한 담론

백삼/이한백 2013. 11. 19. 16:30

조선과 한국의 국학(國學)에 대한 진솔한 담론

 

우리는 조선의 국학인 유학을 한국의 국학인 기학(氣學)으로 승화 발전시켜 지구촌의 모든 인류문명사를 바로 선도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조선과 한국의 만남이 만들어온 모든 역사는 시간적으로 단절 없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치열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역사는 이처럼 과거,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이 현재라는 시점에서 함께 조우하는 진정한 만남의 학문이다. 이 조우(遭遇)하는 시간의 역사는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지 간에 모두 사실의 산물이다. 역사는 오르지 그 경험문화를 통해 사실만을 현재를 통해 미래로 전달할 뿐이다. 설상 어떤 위정자들이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도, 그 역사는 왜곡된 사실의 역사로 그대로 남을 뿐이다. 역사의 기록에는 한 치의 거짓도 결코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는 거짓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진실 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 진실 된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바로 조명해보고, 그리고 그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 미래의 후손들에게 바른 삶의 가치를 전달해야만 할 것이다. 조선이 살아온 오백년의 역사는 바로 한국이 살아온 육십년의 역사와 그대로 조우한다. 그리고 그 조우의 만남은 바로 머나먼 미래의 바른 역사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라는 시점에서, 이 조선과 한국을 연결하는 역사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라의 진정한 학문인 국학에 관한 것이다. 바로 조선의 국학은 무엇이며, 한국의 국학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한국이 조선의 국학(國學)에 대해서 먼저 인위법(人爲法)으로 묻는다.

 

한국 : 지금 현시대의 후생들이 선생님에게 바른 가르침을 구하기도 하더이다만, 육십 평생 그렇게도 그리워한 지음(知音)의 선생님을 이제야 만나게 되는구려. 이승에서 내비치지 못한 속내가 이렇게 많소이다. 내 언젠가 당신에게당신의 피와 살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온전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소이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당신을 내세워 거치장한 푸닥거리를 하며 비난만을 하려하는데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소. 현시대의 사람들은 바로 과거 선조들의 역사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지 않소. 돌아보건대, 내 평생의 배우고 익힘이란 오르지 조선의 학문이었소. 도대체 선생님이 말하는 조선의 학문이라는 국학(國學)이란 무엇입니까?

 

 

중국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무덤   



조선 : 비록 산이 이쪽과 저쪽에 있어도 좁은 반도에서는 이렇게 지척이거늘, 먼저 저승에서나마 후생의 부음을 받고 기뻐했다오. 세속의 인연이야 모두 부질없지만, 멀고도 먼 북망산(北望山)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후생을 만나고 싶었소. 피상(皮相)에 머무는 중생들의 소란은 유학의 실천만으로도 그 쓸모를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깨치지 못한 이유 때문이라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사상을 널리 알려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 혼돈의 세상에선 정도(正道)의 길은 멀고도 먼 일인 것 같소. 나는 유학의 학문과 사상체계가 나의 조선에서 완성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주석과 첨언은 필요 없다고, 바로 생각하고 있었다오. 조선의 국학은 바로 조선에서 완성된 유학의 성리학이요, 주자학이요, 양명학이요, 실학 등이었다오. 그래서 나는 제자들에게도 매일의 책읽기로 선현의 말씀을 새기도록 독려하였었고, 바로 그들과 토론하기를 즐기지는 않았던 것이었소이다.

 

 

유학을 발전시킨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한국 : 선생님의 유학에 대한 불굴과 소신은 비록 값진 것이나, 후생들이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이유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게요. 선생님은 유학의 모든 학문들이 만들어낸, 그 이기논쟁을 통해 미욱한 깨달음이나마 얻은 것이 있었소. 나의 관심은 오르지 유학의 형이상학적인 짜임새에 있는 것이 아니라오. 모든 만물의 근원을 밝히는 출처(出處)의 문제를 조선의 국학인 유학의 범주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느냐하는 바로 그 문제라오. 올바른 가치판단 없는 이기논쟁으로 힘껏 현세에 뛰어들어 이 시대를 개혁할 수는 없을 것이고, 오르지 선악의 구분만으로 사실에 입각하여 바른 진리를 탐구하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치세 또한 어렵지 않겠소. 나는 양극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출처의리를 세우려했을 뿐이라오. 선생님의 유학적인 이기논쟁은 조선의 당쟁이요, 한국의 모든 정쟁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아닐 런지요. 또한 그 이기논쟁의 양극단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오늘날의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건지요.

조선 : 답답한 노릇이지 않소. 그릇은 물건을 담는 도구이고, 그 쓸모를 다하면 그만이지 후생이 언쟁을 나눈 그와 같은 철학적인 논리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내가 산에서 산천제(山天齋)를 지어 안으로 밝혀야 할 것이 경()이고, 밖으로 단호해야 할 것이 의()’라는 신조어를 벽에 붙여놓고 지낼 때의 그 굳센 마음가짐으로 본다면, 정작은 명철한 정신수양과 분명하고 절도 있는 행동규범이 반드시 필요할 터인데. 다시 말해 유학의 이기논쟁에 대한 창조적인 원칙의 신뢰성을 말함이오.

한국 : 그야말로 우뚝 솟아 속세를 벗어나고 희고 맑은 성품이 세상 밖에 있는 절개 높은 선비 같구려.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위기가 닥쳤거나 어쩌면 전시(戰時)에는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현실과 같은 적적하고도 혼탁하고 무사한 이 시대에는 과연 어떤 쓸모가 있을 런지 몹시 궁금 하오이다. 무릇 그릇은 쓸모없어도 그릇으로 남듯이, 역사는 반드시 남는 것이 아닐 런지요. 기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같은 때 가장 활발한 의병활동을 한 이들이 그대의 제자들이었던 사실은 어쩌면 지당한 일이오. 허나 지금의 한국은 내가 선이면 나를 비판하는 이들은 소인배들이므로, 적과 나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지 않겠소. 허나 그른 것은 깨고 바른 것을 들어내는 파사현정(破邪顯正)도 때가 있는 법. 간사한 사()는 언제나 제 모습이 또렷이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 아닐 런지요. 또한 이러한 간사함은 반드시 때가 되면 들어나 온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것은 아닐 런지요. 과연 조선의 국학인 유학이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있는지요.

 

 

 

조선 유학의 선구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조선 : 내 그걸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궁극적으로 치인(治人)의 학문으로 인정되던 전통유학의 경전을 숙독하고 궁구하여 나의 사유체계를 세우고서 몸과 마음을 닦는 수기(修己)의 방안을 개척하는 것이 유학의 바른 길을 세우는 길이 아니겠소. 후생의 작업은 수기의 학문으로만 생각하던 유학을 철학적으로 탐구해서 치인의 방안을 모색한 것이었소. 해서 나는 형이상학에 그쳤던 유학을 현실과 이어주면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으로 나아가려는 것이었지 않소.

한국 : 마땅히 그러하오. 바로 그것이 선생님과 내가 생전에 서로를 흠모했던 이유이지 않겠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대화하려는 욕심을 이 이승에서는 이루지 못할 것 갖소. 왜냐하면 한국은 조선이 아닌 현실 속의 세상이니까요. 지금 한국은 조선의 유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국학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의 뒤를 따를 것이요. 그러나 선생님을 언제나 늘 기리며 잊지 않을 것이요. 조선의 국학은 유학이었지만, 그 유학은 언제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성을 들어낸 학문이라고 생각이 되오. 한국은 조선의 국학인 유학이 극복해내지 못한, 그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국학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오.


조선 : 내가 후생과 작심하고 자주 만나려 했다면 기회가 많았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내 아둔함 때문일 듯도 하오이다. 후생이 험난한 세상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니, 나도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다시 뒤돌아보게 되었소. 조선의 유학은 실학의 이기론에 빠져 국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했지만, 새로운 한국의 국학은 한민족의 위대한 학문으로 거듭나길 바라오. 그런데 후생이 말하고자 하는 그 한국의 국학이란 도대체 무엇이오.

 

 

이순신장군의 도검


한국 : 자고로 국학(國學)이란 칼날과도 같은 것이지요. 바로 칼날은 백성들의 병들고 아픈 곳을 도려내어 치유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칼날이 칼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오히려 그 칼날로 상처를 입게 마련이죠. 조선의 국학인 유학의 칼날은, 바로 조선의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 칼날이었죠. 그 결과가 바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와 같은 국폐로 나타났죠. 자못 진정한 국학의 칼날은 그 자유로움에 있는 것이죠. 이 자유로운 국학의 칼날은 모든 부당함이 들어나면 하늘을 베고, 땅을 베고 사람을 베는 칼이죠. 바로 천지인의 칼이며, 천부사상의 칼이며,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칼인 것이지요. 이 위대한 한국의 칼날은 바로 빔의 칼날인 것이죠. 왜냐하면 칼날의 벰은 빔을 통해 모든 천하 만물을 모두 벨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의 칼날은 이제 모든 잘못된 학문을 베어내고 수없이 많은 학문을 융합하는 새로운 학문의 칼이죠. 우리는 이 칼을 빔의 칼날로 기학의 칼이라고 부르죠. 이 기학(氣學)의 칼날은 앞으로 모든 지구촌의 문명을 새롭게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몸은 시공간의 흐름, 몸은 천지의 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바로 '기계로서의 몸'의 특이점이다.

 

조선과 한국의 국학에 대한 진솔한 역사적인 만남은 이렇게 매듭지어 나간다. 조선의 칼날이 유학이었다면, 한국의 칼날은 바로 기학이다. 기학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갈등들은 베어나고 세 살이 솟아나게 하는 융합의 학문이 될 것이다. 자고로 국학은 사회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신문화를 만들어내는 그 힘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회통합을 이루는 힘은 거침이 없어야만 한다. 거침은 막힘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막힘은 장애물이 없는 것이다. 이 장애물이 없는 것은 마음에 막힘이 없는 빔의 마음을 말함이다. 한국의 국학은 기학이라는 학명(學名)으로 막힘없이 인류문명을 하나로 통섭해 나갈 것이다. 인류문명사에 등장했던 모든 학문들을 거침없이 넘나들 수 있는 학문은 이제 유일하게 기학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기학의 바로 전 우주의 에너지학이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는 모든 우주만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빔을 통해 소통하며 세상을 하나로 통섭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기학의 움직임을 순환논리의 모든 역사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기학의 역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일 것이다. 이제 한국은 이 기학을 국학(國學)으로 승화 발전시키며, 앞으로 지구촌의 모든 문명을 힘차게 일으켜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함께 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