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피카소의 그림세계

백삼/이한백 2015. 12. 16. 13:10



피카소(Picasso,1881~1973) 


 그림이 바로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 이다.

'아비뇽의 여인들' '아비뇽의 처녀들' 다 같은 작품이다.


243 X 233센티미터의 거대한 화폭 안에 여자 다섯이 그려져 있다.

네 여자는 서 있고, 한 여자는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익히 보아왔던 그림들 속 여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때까지 화가들의 화폭 속 여인들은 항상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아름답지 않다. 보기 흉하다.

아니 그런 여자의 모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큰 눈, 정면의 모습에 담긴 옆 모습의 코, 오른쪽 여자들의 모가 난 얼굴,

엄청나게 큰 발, 도무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른쪽 여자는 난폭하게 쭈그리고 앉아 몸의 등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여자의 얼굴은 정면이다. 그것은 가능한가? 아니다. 불가능하다.

하나의 화폭 안에 어떻게 얼굴 정면과 등이 함께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 다섯 여자들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 화면에 둘 이상의 시점이 동시에 들어간 것이다.

여자들의 육체는 찢어져 있다. 그는 말했다.

“비뚤어진 코,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코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1907년은 마땅히 젊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그 해에 큐비즘이 시작되었고, 현대 미술도 시작되었다.

이 그림은 현대 회화의 첫걸음을 알리는 기록이다.



피카소가 비싼 이유 

  

유명 화가, 비싼 화가 하면 누구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화가는 당연히 피카소다.  

르네상스 미술이 절정이었던 15세기 이후 400여 년 동안

서양미술에서는 원근법과 단일시점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었다.

멀리 있는 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커 보이고,

화가가 바라보는 한곳 시점에서 본 대로만 일관되게 그려야

현실을 잘 표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렇게 규칙에 맞게 그리는 것만이

꼭 세상을 잘 그려 내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사물을 사방팔방에서 본 시점(視点)을

다 한 화면에 넣어 그렸고, 원근법도 무시했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게 사실은 당시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는 이미 전통과 결별을 선언하며

변화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1, 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실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만이 예술이 될 수는 없었다.


 피카소는 여기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세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냈다.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은

이런 작가의 특징이 처음 발현된 그림이기에,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그림 몇 개를 꼽을 때 꼭 들어간다.


이 그림은 직업여성 다섯 명의 누드를 그렸는데,

우선 이 여성들이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나

빤히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이전의 19세기 화가들이 그렸던 전통적인 누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태도도 획기적이지만, 기법적인 면에서는

여인의 모습을 앞뒤 양옆에서 본 시점을 

마치 한 시점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린 것,


즉 다시점(多視點) 회화라는 게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인 것이었다.

오른쪽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면 이 점이 확연하게 보인다.

얼굴은 정면에서 본 얼굴이지만 코는 측면에서 본 듯 그린 것이고,

엉덩이는 뒤에서 본 시점이다.


리고 그림 전체적으로 원근법도 무시했다.

이 때문에 뒤에서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성과

천막 안에 앉아 있는 여성들 사이의 거리감도 완전히 없어졌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입체파 미술을 알린 신호로 여겨져

서양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남은 것이며,

뉴욕 현대미술관의  핵심 소장품이다.  

 

중요한 건 피카소가 시작한 이런 ‘새로운 미술’이

피카소 혼자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피카소가 시작한 새로운 미술,

특히 그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

1907년쯤부터 시작한 ‘입체파(Cubism)’ 미술은

당대 유럽 미술계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후 서양미술과 전세계 미술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눈을 찾아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튀는 행동을 해서 혼자 날뛴 것에 그치면 광인에 불과하지만,

그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역사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피카소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은 화가인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특히 ‘선구자’가 중요하다.

선구자, 즉 ‘처음’이라는 것은 곧 ‘새로움’을 뜻한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인 세계가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전에 유명했던 선배 예술가들의 세계를 잘 배워

답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이런 예술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감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의 것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예술가들은 그만한 역사적 위치와

수치(작품 가격)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고 하겠다.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

가수 파트리샤 카스(Patricia Kaas)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대 히트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작 샹송의 하나.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작사하고 친구인 피애프 루이기가 작곡했다.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는 녹음상태가 별로라서 카스의 것으로 했다.


<가사 내용>

나를 꼭 껴안고 매혹의 말을 들려 주세요.

이것이야말로 장밋빛 인생입니다.

당신이 입맞춤할 때는 최고로 행복해요.

그리고 나는 눈을 감고 장밋빛 인생을 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안을 때,

나는 별천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미꽃 피는 세계입니다.

당신이 말할 때, 하늘에서 천사가 노래하지요.

모든 말이 사랑의 노래로 되고 마는 것 같아요.

당신의 마음과 혼을 나에게 주십시오.

인생은 언제나 장밋빛 인생이 되지요.






































게르니카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좌파 인민전선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파를 나치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으로,

1939년 프랑코파의 승리로 종전될 때까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바스크 족의 수도인 게르니카가 나치에 폭격당하면서

15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피카소가 분노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전투로 인해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점.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의 2대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대작


<게르니카>는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대상의 표현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거의 흑백 톤의 컬러만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극대화되었다.

캔버스 왼쪽부터 보면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 다음 회(최종 회)에서는 이런 전쟁을 소재로 한 그림 중

6.25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을 주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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