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스카라극장을 아십니까?

백삼/이한백 2015. 9. 25. 12:56

스카라극장을 아십니까?

지금 나이가 서른을 넘기신 분들은 아마 스카라극장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1935년 지어졌고 서울 중심부의 유명 극장이었죠. 지하 1층 지상 2층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양식의 전형으로 불렸습니다.

이 건물은 그런데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지난 2005년 문화재 당국이 이 건물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자 문화재가 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것을 우려한 건물주가 건물을 부숴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대세를 타던 시기였고 서울 유일의 단관극장이었던 스카라는 그렇지 않아도 영업이 잘 안 되던 차에 개조나 매매 등에서 지장을 받을까봐 건물주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없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죠.

이제 스카라극장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높은 빌딩이 세워져 있습니다.

유럽은 잘 해놨던데,
우리는 왜 제대로
변변한게 없냐고요?

유럽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유럽은 문화재나 유적이 정말 잘 보존되어 있더라. 너무 부럽다" "우리는 왜 그런 거 하나가 없느냐" 이런 얘기들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유럽 나라들에 비해 잔존 유물 숫자가 적은 나라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대부분의 문화재나 유물, 유적이 스카라극장 같은 운명을 맞았을 뿐입니다.

추측이지만 유럽의 내로라하는 문화재들을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자기 동네 개발을 놓고서는 지역 문화재 이전이나 철거에 대부분이 동의하실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사실 그런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과거의 유물들을 그저 물건으로만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역사 기억 방식 때문이라고.

지식으로서의 역사는 그만,
되살아 나는 역사로

유럽은 역사와 유물을 기억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문화재의 제작 기법을 배우고 조형미를 배우고 어느 시대 작품인지를 외우지만 그 사람들은 이보다는 그 유물이나 유적에 담긴 스토리를 배우고 그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여기가 나치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곳, 피카소가 즐겨 찾던 식당의 즐겨 앉던 자리,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곳 등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 문화재를 통해 역사와 내가 연결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항복 조인식 현장에 내가 있는 것 같고, 피카소가 앉던 자리에 앉아서 그가 느꼈을 심상을 생각해보게 되는 겁니다. 자연스레 그렇게 됩니다. 과거 역사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고 역사가 깨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공부를 하고 특징을 외우는 식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역사와 나의 연계성을 일깨워주지 못합니다. 지식 한 조각을 머릿속 저장장치에 넣는 것에 불과하며 유물을 그저 피상적인 구경거리로만 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보존이냐 철거냐'하는 문제가 터져나와 그것이 당장의 내 경제적 이익과 상충될 때는 별 고민 없이 이익을 택하게 만드는 겁니다. 최소한 그 유물이나 유적이 얼마나 험난한 수백 수천년의 시간을 견뎌서 우리에게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아마 결정이 쉽진 않게 될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워낙 문화예술 분야에 도통했던 선조들이 많았던지라 왕조가 망하고 수도가 불타는 경우를 수없이 당했어도 그래도 지금 우리 곁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고급진 문화재'들이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