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사대주의를 이용해 조선의 권력을 쥐었던 노론의 마지막 당수는 이완용이다. 이완용은 친일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조선 멸망 당시 일제에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76명 중 56명이 노론이었다. 역사관으로 보면 중화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친일세력은 청산되지 않고 그대로 명맥을 이어 군부독재 세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주류세력은 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은 주변 강대국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주장한 랑케의 실증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가면 한나라(한 무제)가 세운 식민통치기구인 한사군(일제시대로 보면 조선총독부 역할)이 고조선을 통치·정복했으며 일본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고대사가 된다. 독도는 일본 땅이 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주요 생존술 중 하나가 국고 독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2008년부터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진행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는 철저히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진행됐다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중국 공산당 동북공정 논리 그대로
지난 4월17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동북아특위)에서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총 47억2160만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돼 만들어지고 있는 동북아역사지도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니 참담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덕일 소장은 “왜 매국사학에 세금을 들여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동북아특위로부터 지도 검수를 부탁받은 이 소장의 발언과 그의 저서 등을 참고하면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한사군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고대사 왜곡과 독도 표기 생략 등 1차 사료에 반하는 지도 표기다.
한사군한반도설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했다는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내용으로 조선총독부에서 개발한 식민이론이다.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지도편찬위원회)는 한사군의 위치를 정한 자료 64개 중 중국 한서지리지를 39번,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의 학설을 34번 인용했다.
이 소장은 “한서지리지에는 한반도에 관한 지식 자체가 없다”며 “지도편찬위원회에서 자의적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병도 전 교수는 한국사 왜곡을 주도했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에 재직했던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이병도 전 교수는 해방 이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일왕 중심의 역사관을 가진 덴리교에 참석하기도 했다.
▲ 중국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 중국의 조조가 세운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점령한 것으로 표기했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위촉오 221년~265년'.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을 표절해 조조의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동북아역사지도는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선이 산맥과 강을 가로 질러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그 결과 평양 부근이 한나라 영토가 됐다. 지난 4월 동북아특위에서 이 소장은 “영토경계는 산맥과 강으로 정하는데 산맥을 두 개나 가로질러 국경을 정했다는데 어디 그런 자료가 있느냐”고 동북아역사재단 측에 물었다. 평양 부근을 중국영토로 만들기 위한 역사왜곡이라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이에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동북아역사재단 역사지도편찬위원회 소속)는 “삼국사기 자료와 삼국지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라면서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갑자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소장은 “고구려사를 전공하신 분이 삼국사기 사료를 몰라서 되겠느냐”며 “중국 담기양이 그린 동북공정 자료를 베낀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북공정에 의해 왜곡되기 전 자료인 중국 고대 사료들은 고조선 강역과 한사군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일대에 존재했다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역사지도는 위나라 조조가 경기도 일대까지 점령했다는 입장으로 그려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 산하 재단에서 대한민국 세금을 들여 동북공정과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역사왜곡에 굳이 나설 필요조차 없는 셈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하버드대에 의뢰해 2013년에 발간한 ‘한국 고대사의 한나라 영지들’(총 6권) 1권에 따르면 한반도 고대사는 고조선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한군현(식민통치기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소장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를 누락하고 단군을 신화로 폄하한 채 한군현의 이야기로 시작했다는 것은 동북공정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 노예의 역사관”이라고 지적했다.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하는 것도 한사군 한반도설을 탄탄하게 해주는 논리다. 김세연 의원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고조선 건국 시점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데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 앞부분 1300년을 잘라 먹고 기원전 1000년부터 연대 구분이 들어간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지적했다.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지배, 남부는 일본이 지배
한반도 고대사를 식민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은 일제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임나일본부설도 같은 맥락이다. 이 주장은 일본이 3세기경부터 외국에 진출할 정도로 일본의 고대사회가 발전했다는 일본 우익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임나(가야)를 왜(일본)가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해 200여년간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당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고대국가가 있어선 안 된다. 따라서 일본 우익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백제의 건국을 늦추게 됐고, 이는 현재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도 수록된 내용이다.
현재 대다수 역사교과서에는 백제가 고대국가의 기틀을 갖춰 건국된 시점을 3세기 고이왕, 전성기를 4세기 근초고왕 시기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근거하지 않고 식민사관에 근거한 서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민주정부시기인 2002년부터 사용된 교과서 ‘부록’에만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의 재위기간을 ‘BC 18년’이라고 표기했다. 2002년 이전 교과서에는 온조왕부터 고이왕까지의 재위기간이 아예 표기되지 않았다.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고구려의 성장 120~300년' 서기 300년에도 백제와 신라가 없었다고 그렸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 백제와 신라를 지운 것이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동북아역사지도(삼한 소국의 분포 151~250)는 교과서보다 한 발 더 후퇴했다. 삼국이 아닌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표기했기 때문에 백제와 신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은 강력한 왕권이 확립돼 있어 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맹국가 단계에 불과한 삼한으로 대체했다는 주장이다.
동북아역사지도 고대사 전문위원인 김태식 홍익대 교수가 쓴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59쪽에는 “한강 유역 백제의 정세는 어떠하였을까?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27년(260)조에 6좌평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완비했다고 나오나,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춰 봐야 할 것이다”고 나와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4세기에 신라와 백제가 없다는 지적에 대한 자료를 보여달라”고 비판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삼한의 한 지점을 행정구역상 ‘신라국’과 ‘사로국’으로 표시했다.
임나일본부설을 개발한 일본 쓰다 소키치는 임나(가야)를 김해 일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현재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일부 한국 학자들은 임나를 전라남도 전부, 충청북도, 충청남도 그리고 경상남·북도 반 이상을 집어넣고 ‘임나’로 표기하고 있어 더 후퇴했다는 게 이덕일 소장의 지적이다. 1차 사료들을 종합하면 당시 ‘일본’이라는 명칭도 없었고, 왜는 동아시아에서 발전이 가장 느렸던 변방이었다.
독도 표기 누락은 실수?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드는 목적은 명목상 한중일 역사 갈등해소다. 이 지도에는 고려시대부터 일제식민지시대까지 여러 장의 지도가 수록돼 있지만 이 지도 한국편에 100장이 넘는 지도에는 모두 독도가 표기돼 있지 않았다. 임기환 교수는 동북아특위에서 “GIS 지도, 디지털 지도를 획을 긋는 과정에서 누락시켰던 내 실수이고 앞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지난 8년 동안도 수많은 논란이 있었던 독도 누락 사실을 60여명의 역사학자가 몰랐다는 사실은 세금이 허투루 쓰이고 있는 것이다. 김세연 의원은 “독도가 (한일간) 문제가 되고 있는데 1300년 동안의 역사지도에 그리지 않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답변을 하더라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고려 전기 행정구역-춘추도와 동계 남부 1010~1083년'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고려 중기 행정구역-춘주도와 동계 남부 1123~1693년'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고려 말 지방제도의 개편-교주 강릉도 1389~1412년'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 ||
독도의 한국 영토 표기누락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는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 위원 구성은 편찬위원 윤병남(서강대, 편찬위원장), 김유철(서강대), 배우성(서울시립대), 임기환(서울교대) 등 4명, 전문위원회 노중국(전 계명대, 위원장), 노태돈(전 서울대), 김영하(성균관대), 주보돈(경북대) 등 41명, 편집위원회 하일식(연세대), 김병준(서울대), 김선민(숙명여대) 등 18명으로 총 63명으로 이뤄져있다.
이덕일 소장은 이에 더해 지난 2013년까지 동북아역사지도 책임자였던 배성준 연구위원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위를 받은 배성준 박사의 ‘독도 문제를 보는 비판적 시각을 위하여’에는 이같은 부분이 있다.
“독도 문제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모든 문제는 ‘독도는 우리 땅’ 노래 가사같이 간단명료해 보인다. 마치 신라의 우산국 정벌 이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말은 ‘주장’이 아니라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독도가 우리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독도에 대한 ‘진실’이 얼마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선입관에 결박돼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독립운동사 사라진 한국 주류 사학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은 이뿐이 아니다. 이 소장은 “윤관의 9성도 표기 되지 않았고, 독립운동사를 반영하지 않았으며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만 잔뜩 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명나라 태조주원장은 조선과 국경선을 정할 때 윤관의 9성을 중심으로 획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 역시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쪽에 빌미를 줄 수 있다. 독립운동사를 배제하는 움직임은 최근에도 계속됐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초안을 마련한 ‘2015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 초안에도 반영됐다. 교육부가 한국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하지만 비판의 시선이 사라지면 언제 또 다시 진행될지 모른다는 게 ‘재야사학자’들의 우려다.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는 ‘임나일본부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었다’고 소개돼 있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이 지적했다.
당시 국감에서 동북아역사재단 김학준 이사장이 “저희가 임나일본부설을 강력히 부인한다”고 하자 윤 의원은 “홈페이지에 그렇게 돼 있다”고 따졌다. 그러자 김 이사장은 “일본 학계에서는 통설이 됐으나 그 뒤 부인하는 많은 설이 나왔다는 것을 소개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홈페이지에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학설에 대해 “학설로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돼 있었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우리는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지적해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내용이 수정됐다.
김학준 이사장은 5공화국 때인 1985년부터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국회의원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교육부 산하 재단의 이사장이 군부독재 집권당에 의해 발탁됐던 인물이라는 점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명제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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