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이 0.003원? 광복 70년 서울의 변천사
Visit 978 Date 2015.08.11 17:01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당시 세종로에 모인 인파(1948.08.15.) [서울시민 구보 씨의 서울광장 이야기] 중
광복절을 체험한 세대는 국민 10명 중 한 명에도 못 미치다보니, 광복의 기쁨보다 휴무의 기쁨을 먼저 챙기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을 기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누가 만들었고, 그로 인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질문에 답을 주는 날이 바로 광복절이기 때문입니다. <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광복 70년을 맞아 서울이 70년 세월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6월부터 광복 이후 70년간 서울의 변화상을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했는데요, 이중 일부를 간추려 오늘의 뉴스로 전해드립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 광복 70년,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 - ① 인구·면적 : 1945년보다 서울 인구 11.5배 증가, 면적 4.4배 증가 - ② 생활물가 : 1945년보다 쌀 50.5배 상승, 담뱃값은 0.003원에서 4500원으로 껑충 - ③ 교통수단 : 1950년대 주요 교통수단은 전차, 1960~80년대 버스, 1997년 이후 지하철 - ④ 산업·임금 : 1948년 목수(대목), 제화공이 공무원보다 고소득 직종 - ⑤ 주거·생활 : 1960년 서울가구 절반 이상이 단칸방에 거주, 2010년 1인 1방 - ⑥ 보건·의료 : 50년 새 남자 10.2cm 여자 4.4cm 커져 |
① 인구·면적 : 1945년보다 서울 인구 11.5배 증가, 면적 4.4배 증가
서울의 인구는 1945년 광복 당시보다 무려 11.5배나 증가했습니다. 1945년 서울의 주민등록 인구는 90만 명이었으며,
88올림픽이 있던 1988년 1,000만 명을 돌파, 2014년 1,037만 명에 이르게 됐습니다.
면적은 136㎢ → 605㎢로 4.4배 증가했고, 행정구역은 8개 구(268개 동)에서 25개 구(423개 동)로 늘었습니다.
② 생활물가 : 1945년보다 쌀 50.5배 상승, 담뱃값은 0.003원에서 4500원으로 껑충
1945년 서울의 쌀값(40kg 기준)은 35전(0.35원)에 불과했습니다. 2015년 현재 7만 6,000원으로, 화폐개혁 이후인 1963년과 비교해보면 무려 50.5배나 증가했습니다.
1945년 광복을 기념해 출시된 국내 최초의 담배 ‘승리’의 가격은 0.003원(당시 가격으로는 3원)이었습니다. 이후 1965년 ‘아리랑’이 25원, 1985년 ‘솔’이 450원, 2005년 ‘디스’가 2,000원, 2015년 현재 ‘에쎄’가 4,500원입니다.
1963년 첫 등장한 라면은 1963년 대비 76배(10원→760원) 상승했습니다. 영화 관람료는 1955년엔 35원 정도였지만 2015년엔 9,000원 이상이 됐습니다.
1955년 시내버스 기본구간 요금은 2원이었으며, 1965년 8원, 1985년 120원, 2000년 600원, 2015년 현재 1,300원으로 1965년 대비 163배 상승했습니다.
③ 교통수단 : 1950년대 주요 교통수단은 전차, 1960~80년대 버스, 1997년 이후 지하철
1950년대까지 서울의 주요 교통수단은 전차였습니다. 전차가 사라진 후, 서울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1960~80년대에는 버스, 1997년 이후에는 지하철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49년 서울시의 운수사업 개방으로 버스가 대중교통수단으로 부상, 1960년대에 버스 이용객이 전차 이용객보다 많아져 버스의 수송 분담률은 1962년 57.7%(전차 33.8%), 1974년 81.3%로 급증했습니다.
서울의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1호선(9.54㎞), 1984년 5월 22일 2호선 순환선(54.2㎞)이 완전 개통되었으며, 2014년 3월 기준 지하철 9개 노선 총연장은 327.1㎞, 전동차 수는 3,715량에 달랍니다. 지하철의 수송 분담률은 1984년 11.4%에 불과했으나 1997년 30.8%로 버스의 분담률 29.4%를 넘어서 서울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승용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승용차의 수송 분담률은 1984년 7.3%에 불과했으나 1997년 20.6%, 2013년 22.9%를 나타냈습니다. 승용차 수는 1952년 282대에서 1991년 100만 대로 증가, 2002년에 200만 대를 돌파해 2014년 251만 대를 기록했습니다. 1952년 대비 8,903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④ 산업·임금 : 1948년 목수(대목), 제화공이 공무원보다 고소득 직종
산업 종사자 수는 1981년 238만 명에서 2013년 459만 명으로 1.9배 증가했습니다.
직업별 임금을 살펴보니, 1948년 목수(대목)와 제화(구두)공 임금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각각 월 12.1원, 10.7원으로 회사원(9.3원), 공무원(4.4원)보다 많았으며, 토목건축업 기술자들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습니다(전문직은 제외).
2014년엔 사무종사자 임금이 월 301만 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용접원(251만 원), 주조 및 금속 가공관련 기계조작원(249만 원), 건설관련 기능 종사자(240만 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⑤ 주거·생활 : 1960년 서울가구 절반 이상이 단칸방에 거주, 2010년 1인 1방
1960년 서울에서는 전체 가구 중 방이 1개인 가구가 51.1%로 절반이 넘었으며, 2010년에는 방 3개인 가구가 43.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60년에는 방 1개당 평균 2.9명이 거주하였으나, 2010년에는 1.1명으로 한 명이 방 1개씩 차지하게 됐습니다.
1960년대에는 라디오, 1980년대에는 컬러 TV, 2000년대에는 컴퓨터가 가정에 널리 보급된 전기기기였습니다. 난방연료는 1975년 연탄(95.1%)에서 2010년 도시가스(79.2%)로 변화했습니다.
⑥ 보건·의료 : 50년 새 남자 10.2cm 여자 4.4cm 커져, 1947년 99.3%가 집에서 출생
1965년 서울 남성(17세 기준)의 평균키는 163.7㎝, 몸무게는 54.3㎏이었습니다. 2013년에 173.9㎝로 10.2㎝가 커지고, 몸무게는 69.6㎏으로 15.3㎏이 늘었습니다. 여성 역시 같은 기간 평균키는 156.9㎝에서 161.3㎝로 4.4㎝, 몸무게는 51㎏에서 56.7㎏으로 5.7㎏ 증가했습니다.
주요 사망원인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1947년 주요 사망원인으로는 폐렴(12.6%)과 유아병(12%)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2013년에는 각종 암(31%)과 뇌혈관질환(8.7%), 심장질환(7.9%)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의 출생아 수는 1947년 인구 1000명당 37.3명에서 2013년 8.4명으로 약 4분의 1로 줄었습니다. 1947년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83.4명으로 출생아 12명 중 1명꼴로 1세 이전에 사망했지만, 2013년 영아 1,000명당 3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출생장소는 1947년에는 99.3%가 집이었으나, 2013년에는 98.8%가 병원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늘 기사에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이나 기타 자세한 자료는 서울연구원 홈페이지 인포그래픽 메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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