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유성룡<김덕령은 반드시 죽여야!>

백삼/이한백 2015. 7. 14. 10:03

오늘 징비록을 보니, 유성룡이 김덕령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하던데요.


실제 사서의 기록에는, 그 반대로 선조가 김덕령을 실제 국문하고 그의 재주를 아껴
살려줄까 하였으나 유성룡이 나서서 김덕령을 처단해야 한다고 하였네요.
선조가 다시 한번 김덕령을 살리고자 하였으나, 다시 유성룡이
<살인을 많이 하였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라고 했네요.^^;

일전에도 한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지요.
의병장 조헌이 유성룡과 이산해의 참수를 청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1444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1596년 8월 1일 기사中
김덕령이 옥에서 고문 받다가 죽으니 남도의 군민들이 원통하게 여기다
김덕령이 옥에서 고문 받다가 죽었다.
덕령이 전령(傳令)을 듣고 즉시 부하를 거느리고 길에 올랐는데 적이 이미 평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도로 진(鎭)으로 돌아갔다. 
이때에 이르러 덕령을 나국(拿鞫)하려 하였는데, 조정이 그의 용력이 절륜(絶倫)하다는 말을 평소에 들었으므로 
혹 그가 체포에 응하지 않을까 근심하여 여러 가지로 방략(方略)을 만들어서 그의 도망을 미리 방지하였다.
덕령이 순순히 체포되어 하옥되었는데 상이 직접 국문하였다. 
이에 덕령은 사실대로 답변했으나 증거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유명해진 까닭에 이시언(李時言) 등의 시기를 받았으며 조정 또한 그의 날쌔고 사나움을 제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의심하였으므로 기회를 타서 그를 제거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놓아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상의 뜻도 역시 그러하였는데 대질하여 심문하고는 오히려 그를 아깝게 여겨 좌우에게 묻기를,
“이 사람을 살려줄 도리가 없는가?”
하니, 대신 유성룡 등이 아뢰기를,
“이 사람이 살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그대로 가두어 두고 그의 일당들을 국문한 뒤에 처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판의금 최황(崔滉) 등은 즉시 형신(刑訊)할 것을 청하였다. 
상은 재삼 난색을 지었으나 아무도 구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그는 살인을 많이 했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며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하기도 하였다. 정언 김택룡(金澤龍)은 아뢰기를,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하여 사람들의 웃음을 샀다.


국조인물고 김덕령 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임금께서 제신(諸臣)에게 물으니, 정탁(鄭琢)공과 김응남(金應南)공 등은 
‘김덕령이 틀림없이 반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힘써 말하였으나 영상 유성룡(柳成龍)만은 대답이 없었다. 
임금께서 괴이히 여겨 물으니 유성룡이 대답하기를, 
“이 뒤에 만일 어떠한 생각지 않았던 일이 생긴다면 김덕령같이 용맹한 자를 놓아주었다가 
 다시 잡아들일 수 있을는지는 신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드디어 엄형을 가하여 마침내 옥중에서 죽으니, 나이는 29세요, 때는 병신년(丙申年, 1596년 선조 29년) 8월이었다. 
국인(國人)이 슬퍼하고 애석해 하기를 마치 송(宋)나라 사람들이 악무목(岳武穆)을 슬퍼하듯 하였다.

*악무목(岳武穆) : 악비

선조 : 실제로 보니 쓸만한 장수인 걸? 살려줄까?

 


유성룡 : 절대 안 됨. 살인자에 놔주면 뒷감당 못함.

유성룡 : 뭐 애석하냐고? 절대 아님!!! 죽어 마땅!!!

[출처] 유성룡<김덕령은 반드시 죽여야!> (【부흥】네이버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길공구

 

고로 오늘자 징비록에서 애꿏게 까인 선조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