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년 정월 함신진(咸新鎭·평안북도 의주)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가던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압록강 인근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저고여는 칭기즈칸 휘하의 장군으로 고려에 파견됐던 인물인데, 당시 그를 살해한 용의자들이 고려군 옷을 입고 있었다는 증언에 따라 몽골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고려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저고여 피습 사건이 일어나기 전 고려와 몽골은 나름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이 연합해 거란족의 근거지인 고려 동북지방 강동성 공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몽골과 고려는 형제맹약의 국교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 몽골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에 엄청난 세공(歲貢)을 요구한다.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연합국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이다. 더구나 저고여는 고려에 올 때마다 국왕 고종(高宗)에게 횡포를 부렸다. 자신이 요구한 공물 가운데 몇 가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종 앞에서 물건을 내던지고 욕을 하는 등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고려 백성의 공분을 샀고,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피살되고 만 것이다. 당시 저고여를 고려인이 살해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정황으로 봤을 때 고려와 몽골 간 외교적 분쟁을 유도하기 위한 거란족의 음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몽골 사신 피살 사건이 30여 년간 몽골 침입의 구실이 됐고, 이로 인한 고려의 피해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컸다는 점이다. 지난 5일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 군사훈련을 반대하는 한 시민에게 피습당했다. 다행히 미국대사의 부상 정도가 크지 않아 며칠 만에 퇴원했지만 이 사안은 이념을 떠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테러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퍼트 대사 측의 의연한 대처 또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다만 이를 정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만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앞으로 한·미 양국이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지속하기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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