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정신부활
우리시대에 사라져버린 이순신 장군의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정신을 부활하여 새로운 국가혁신을 도모하는 힘으로 승화
▲ 조선시대에 그려졌다고 하는 충무공 영정
나는 이순신장군을 존경한다. 내가 그를 존경하게 된 이유는 전쟁에 있어서 그야말로 극한적인 열악한 환경의 위기에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불굴의 신념으로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력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러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의 위대한 모습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위대한 정신력은 바로 정유재란에 벌어진 명량대첩에서 극명하게 들어난다. 1597년 9월에 벌어진 이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장군은 자신의 부재 시에 벌어졌던 칠천량 해전의 대패 이후 불과 13척의 배를 인계받아, 그 10배에 해당하는 133척의 왜적선을 상대로 세계, 그 어떤 해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승전을 보여준다. 이처럼 패배가 거의 확실시 됐던 전투에서 이순신이 승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들은 이순신이 명량대첩에 참전하기 전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현대사회를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들은 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은 왜 이 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이순신은 어떻게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의 적함을 모두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들은 당시 이순신이 처한 깊은 고뇌의 마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이 남긴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이 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놓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당시 이순신에게 닫친 승전의 길이 전혀 없는 비참한 상황을 그에게서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처럼 생존의 방법이 전혀 없는 극한적인 상태를 학문적으로 아포리아(Aporia)상태라고 표현한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이 아포리아(Aporia)란 말은 그리스어의 ‘길이 없는 것’이란 뜻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길이 없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 그리고 모든 난관에 부딪쳐 그 어떤 구원의 방법조차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 우리들은 이와 같은 상태를 아포리아(Aporia)상태라고 부른다. 이순신은 이러한 아포리아(Aporia)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주어진 상태를 바로보고, 그리고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 처한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자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과 그대로 일맥상통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상태에 빠진 제자들에게 그 해결책으로 아포리아(Aporia)상태에 스스로 빠져들게 한 다음, 제자들이 그 무지의 아포리아(Aporia)혼돈상태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가르치고 유도한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자신의 과거행적을 제대로 알라는 뜻으로, 이는 바로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이순신가문의 과거행적에서 그들이 얼마나 바른 역사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가문의 가정교육이다.
이순신의 가문교육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간단히 이순신의 형제들이 가진 이름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이순신의 형제 중 첫째의 이름은 복희씨의 이름을 딴 희신이며, 둘째는 요 임금의 이름을 딴 요신이며, 셋째는 순 임금의 이름을 딴 순신이며, 넷째는 우 임금의 이름을 딴 우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들 이름에서 나오는 임금들이 중국의 훌륭한 임금들이라고 알지만, 실상은 이들은 바로 동이족의 피를 받아 중국을 다스린 임금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한 이순신가문의 역사 교육은 뿌리 찾기에 있었던 것이며, 이순신은 바로 이러한 가정교육의 영향을 받아 이를 국가관으로 승화시켜 어려운 국난을 타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 마음이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는 그 마음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평소 이순신 가문의 가정교육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죽음은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가장 보편적이며 사회적인 현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개개인의 죽음이 곧 전체의 죽음과 그대로 같은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이 말은 부분과 전체가 같다는 죽음의 의미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부분과 전체가 같이 이어진다는 카오스 이론의 프랙탈 (fractal)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자연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자기 조직화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아포리아(Aporia)상태의 전쟁 상황에서 선택한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는 바로 생사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순신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은 없는 것이다. 이순신은 바로 이 점을 깨닫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조직화의 힘을 군대조직화의 힘으로 승화시켜, 단지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함몰시키는 승전으로 이끈다. 즉 이순신은 왜선 133척을 자기조직화의 개념으로 모두 바다 속으로 침몰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이순신의 정신은 그대로 왜군 500여 척과 맞아 싸우는 노량해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에 쓰러지면서도 “전우들이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확고한 국가관을 보여준다. 이순신은 이처럼 생사가 본시 하나이며, 또한 국가와 내가 하나임을 그대로 그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현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은 철저한 자본민주주의의 이분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나간다. 즉 이순신의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정신이 모두 도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도륙당하는 이순신의 정신을 부활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그 부활의 정신은 대자연의 순수사상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문장구조를 도치법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도치법은 하나의 문장 안에서 낱말과 구의 정상적인 순서가 서로 뒤바뀌는 것으로, 문장 가운데 특별히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감정이 격화된 상태를 보이려는 경우에 주로 쓰이는 수사법이다. 이 도치법을 통해 보면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의 문장 도치법은 ‘A하면 B이고, B이면 A’ 이다. 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A와 B가 서로 호환성을 가지고 자기조직화를 이루는 문장 구조이다. 이순신이 왜 수많은 문장구조에서 이와 같은 말을 선택하여 군사조직을 하나로 조직화하고자 했는지를 우리들은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아포리아(Aporia)적인 극심한 혼돈 속에서 대자연의 프랙탈 (fractal)과도 같은 법칙을 따르고자 한 것이다. 바로 대자연의 순수성을 군사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이러한 대자연의 이치가 만들어내는 울돌목의 소용돌이 물속에 모든 왜선을 함몰시키고 만다. 우리들은 모두 이와 같은 도치법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아래와 같은 문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A하면 B이고 |
B하면 A이다 |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 |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이고 |
열려면 반드시 두드려라 |
시작이 없는 것에 의해서 시작이 있고 |
마침이 없는 것에 의해서 마침이 있다 |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고 |
팥을 심으면 반드시 팥이 나온다. |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밀어 사랑하고 |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리어 사랑하라 |
우리들은 이제 이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이순신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순신의 가문이 역사적인 뿌리의식을 찾아 이순신을 어린 시절부터 교육했던 것처럼, 이제 바른 역사교육으로 우리시대의 온 국민들을 교육하고 개혁해야만 한다. 이 역사교육 지침은 바로 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리이기도 하며, 이순신이 외치는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의 고고한 외침의 소리이기도 하다. 또한 명량 앞 바다의 울돌목에서 들여오는 순수 이성의 소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순신의 마지막 유언의 소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시대는 인성교육이 완전히 무너진 아포리아(Aporia)적인 혼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무너지면 모든 것은 다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모든 것들은 이순신의 숭고한 삶의 정신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만일 현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에게 이순신의 정신이 제대로 부활하지 못하다면, 우리민족에게 주어지는 삶의 미래는 깜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민족은 이와 같은 이순신의 정신을 철저히 깨달아, 앞으로 닥쳐오는 미래사회를 제대로 개척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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