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美 CIA 고문실태 보고서에 국제사회 비판 고조(종합)

백삼/이한백 2014. 12. 11. 11:17

美 CIA 고문실태 보고서에 국제사회 비판 고조(종합)

 

9일(현지시간) 공개된 'CIA 고문실태 보고서' (AP=연합뉴스)
유엔 인권 전문가들, 고문관계자 기소·처벌 촉구

(베를린·베이징·서울=연합뉴스) 고형규 이준삼 특파원 김경윤 기자 =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실태를 조사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되자 세계 각국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특히 증거 부족을 이유로 고문에 관여한 미국 정부와 CIA 관계자에 대한 기소를 거부한 미국 법무부의 결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 유엔 인권 전문가들, 고문 관계자 처벌 요구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CIA가 자행한 고문이 1994년 제정된 유엔 국제 고문방지협약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10일 "고문을 명령하거나 저질렀다면 이는 심각한 국제범죄로 정치적 편의에 따라 면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고문에 관여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와 CIA 요원을 기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 및 인권 특별보고관도 전날 성명을 내고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미국 정부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 및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CIA의 고문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며 "미국의 도덕적 권위에 오점을 남겼으며 고문 관련자를 기소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사회로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이란·중국, 미국에 '인권문제 이중성' 공격

평소 자국 내 인권문제로 미국 등 서방국가와 갈등을 빚던 이란과 중국은 미국의 이중성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10일 트위터에서 "미국 정부는 인권에 반하는 압제의 상징"이라며 "인권을 제창해오면서 한편으로는 수감자들의 인권의 기본을 짓밟아 왔다"고 지적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하메네이는 "미국 정부는 현실을 모르는 자국민을 오도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고문에 반대한다"며 "미국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간 중국의 인권실태를 비난해온 미국을 겨냥해 "우리는 인권문제를 정치화하고 이중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독일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고문 실태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이번 공개는 "고문은 자유민주 가치의 중대한 위반으로서 재발돼선 절대 안될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미 상원 'CIA 고문실태 보고서' 공개
미 상원 'CIA 고문실태 보고서' 공개 (AP=연합뉴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약 500쪽으로 요약한 '미중앙정보국(CIA) 고문실태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진은 9.11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이 미 해군특전단(네이비실) 기습작전으로 사살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 은신처 건물 밖에 지난 2011년 5월3일 주민들이 몰려 있는 모습. CIA 관계자들은 알카에다 요원들에 대한 '잔인한 심문'에서 얻은 정보가 이 작전에 핵심 역할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bulls@yna.co.kr

친미 성향의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신임 대통령도 10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 같은 비인도적인 행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오늘날 이 같은 행동과 고문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9·11 이후 잘못된 일들이 저질러졌다"면서 "우리가 도덕 권위를 잃으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9·11과 같은 극단적 사건을 패퇴시키려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고문 방조 의혹' 유럽국, 고문방지 원칙론 재확인

유럽 주요국과 유럽연합(EU)은 고문실태 보고서 공개 결정을 높게 평가하고 고문 방지를 강조하는 원칙론적 반응을 보였다. 

EU는 10일 캐서린 레이 대변인을 통해 이번 보고서가 미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 침해에 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CIA의 감금, 심문 프로그램에 맞서는 긍정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이번 공개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는 차별적인 투명성 증진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유럽 국가들이 이처럼 미국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보다는 원칙론 재강조에 나선 것은 유럽 내 20여개국이 비밀감옥 설치 등 CIA의 고문 활동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사이어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4개국이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에 협력했으며 이 가운데 21개국이 유럽지역 국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앞서 1월 태국, 아프가니스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지에 CIA 비밀감옥이 설치됐다가 폐쇄됐다고 보도했으며 최근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전 대통령이 비밀감옥의 존재를 인정했다. 

◇ 중동, "이미 알고 있던 일" 시큰둥한 반응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의 근거지로 꼽히며 '테러와의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중동 국가들은 되려 CIA의 고문보고서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고서 공개 이후 분노를 터뜨릴 것으로 예상됐던 중동지역 각국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샤디 하미드 브루킹스연구소 중동 선임연구원은 "아랍 국가는 이미 10년 전에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국의 고문에 분노했다"며 "그래서 미국인이 10여년 뒤에야 이 문제로 공개 논쟁을 벌이는 것이 기묘해보인다"고 말했다. 

또 중동 각국 정부의 침묵은 이들이 미국에 협조해 용의자 인도와 심문에 관여했고 자국민에 대해서도 고문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AP 통신은 분석했다.

uni@yna.co.kr, jslee@yna.co.kr,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