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한국 민간조사단에 의해 처음 알려진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섬(對馬島)의 돌무덤이 임진왜란 때 희생된 조선인들의 '귀 무덤'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국내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일보사와 문화재환수국제연대, 한일문화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민간조사단은 지난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왜구 약탈 증거를 찾기 위해 쓰시마섬을 방문해 답사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 중 한 현지인의 제보로 발견한 돌무덤에 대해 당시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귀 무덤의 권위자, 김문길 전 부산외대 교수가 두 달여 간의 연구 끝에 귀 무덤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김 교수는 7일 쓰시마시 카미쓰시마(上對馬島)의 히코텐성 남쪽 끝에서 발견했던 돌무덤은 조선인의 귀를 잘라 만든 적석묘, 이른바 '귀무덤'이 확실하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그는 "당시 일본 현지에서 돌무덤을 발견하고 이후 오사카, 나가사키, 후쿠오카 등을 오가며 쓰시마 귀 무덤과 관련이 있는 자료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며 "마침 나가사키에서 발견한 쓰시마 지역의 역사 문헌인 '카미쓰시마지'에서 왜군이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그후 쓰시마 교육위원회에 이 자료를 요청하고 현장 재조사를 벌여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이번에 발견한 무덤은 교토나 다른 곳에 있는 귀 무덤·코 무덤과 형태가 다르고, 다른 무덤과는 달리 '귀 무덤'임을 알리는 표지석 등은 없었지만 현지인들의 진술과 사료가 일치하고 있어 귀 무덤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귀무덤은 '천인총'이라고 불리는데 꼭 1000 명이 아니라 많은 조선인들의 귀·코가 같이 들어있는 곳"이라면서 "이로써 조선인 귀 무덤·코 무덤이 모두 4개 발견됐는데 향후 일본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꼭 환국을 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1992년 일본 고베대학에서 일본 문화사를 전공할 당시 오카야마현 비젠시 가카토 구마카와산 기슭에서 조선인의 코와 귀가 2만 여개 가량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귀 무덤을 발견한 인물이다. 같은 해 김 교수는 부산 자비사의 주지였던 박삼중 스님과 함께 코 무덤을 국내로 모셔왔으며 전남 여수시 호벌치(지방기념물 30호)에 안장했다. 1995년에도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귀 무덤을 발견했으며 아직 국내 환국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신웅 기자
일본 쓰시마섬에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 조선인 '귀 무덤'의 발견은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일보사와 문화재환수국제연대, 그리고 한일문화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민간조사단은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일본 쓰시마섬의 관음사, 해신신사 등 불상이 보관돼 있던 사찰과 신사의 변화를 확인하고 일본의 약탈 근거를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는 조사활동을 벌였다.
당시 민간조사단은 이미 8월에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활발한 조사활동을 벌이지 못한 것을 감안해 관광객으로 위장, 5명의 최소 인원으로 관광 가이드 없이 직접 운전을 하며 쓰시마섬 곳곳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필 조사단 중 아무도 국제면허증을 신청하지 않아 차를 운전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조사단은 고심 끝에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되더라도 현지 운전사를 고용해 조사활동을 벌이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이 불행이 행운으로 변하게 된다. 당연히 현지 운전사는 조사단을 관광하러 온 한국인들로 알지만 자꾸 관광명소가 아닌 도서관과 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자 조금씩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운전사는 조사단에게 쓰시마섬에 온 진짜 목적인 무엇인지 묻게 되고 이에 대해 일본말이 능통했던 전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가 쓰시마섬에 온 진짜 목적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그러자 이 운전사는 조사단의 걱정과는 달리 반색을 하면서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며 돌무덤의 사실을 직접 알려주게 된다.
당시 운전사였던 오야마씨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집 앞 돌무덤에 1년에 한 번씩 사람들이 찾아와 참배를 하고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국인들을 추모하는 의식이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까이 사는 일본인이 무덤을 잘 단장 했어야 하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말을 들은 김 교수는 임진왜란 때 왜장인 가토 기요마사가 쓰시마섬에 조선인 귀 무덤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들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 사진을 찍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를 입증할 자료를 찾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본 오사카, 나가사키, 후쿠오카 등을 오가며 쓰시마섬 귀 무덤과 관련된 자료를 찾던 중 마침 나가사키에서 발견한 쓰시마 지역의 역사 문헌인 '카미쓰시마지'에서 왜군이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조사단 활동을 함께 했던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이상근 대표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면 한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쓰시마섬에 임진왜란 때 전리품으로 베어간 조선인들의 귀 무덤이 있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이야기"라며 "앞으로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과 함께 꼭 귀 무덤도 환국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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