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임란때 明으로 간 조선유민 1만명 넘어

백삼/이한백 2014. 10. 30. 10:32

임진왜란(1592∼1598) 때 우방이던 명나라로 건너간 조선 유민이 1만여 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유민들 중에는 나중에 명에서 병사 3000명을 이끄는 여단장급 군관에 오른 인물도 있었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펴낸 논문집 '동북아역사논총' 41호에 실은 논문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로 건너간 조선 유민 고찰'에서 이같이 밝혔다. 명으로 건너간 조선 유민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담은 연행록과 중국 문헌, 선조실록을 조사한 결과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명으로 간 조선인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임진왜란 때 전쟁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자 수많은 조선인이 가족과 재산을 잃고 굶주리며 유랑했다. 이들 난민 중 상당수는 조선을 도와 참전한 명군 진영에 몰려들었다. 명군은 군량 조달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명군의 장수들은 이들을 구휼해 주거나 군사로 활용하기 위해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철수하는 명군을 따라 국경을 넘었다.

박 교수는 "임진왜란 때 명으로 건너간 조선 유민이 1만 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593∼94년 명나라 장수 유정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주둔할 때 투탁(投託·남의 세력에 기댐)한 조선인이 1만여 명이고, 이들은 유정이 귀국할 때 그대로 따라 도강했다는 내용이 조선의 문신 이항복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국내 학계에서 10만 명 전후로 추산한다.

조선은 명군으로 들어간 조선인들에게 특전을 베풀어 송환하려고 애썼다. 천인은 양인으로 신분을 올려 주고 방자(지방 관아에서 심부름꾼)에겐 경작지를 주는 식이었다. 조선 조정은 명군 수뇌부에 조선 난민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가지 말아 달라는 외교문서를 보냈다. 하지만 명군은 조선 난민을 병사나 일꾼으로 쓰려고 협조하지 않았다.

이들 조선 유민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랴오둥(遼東) 지역을 중심으로 산둥(山東), 장쑤(江蘇), 저장(浙江), 쓰촨(四川)에 살았다. 유민의 일부는 군인이 되거나 명군 유력가 집안의 하인이 되었고, 유랑 걸식하며 사는 이도 있었다. 조선 유민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은 최용회였다. 경주 향리의 아들로, 중인으로 추정되는 최용회는 명에서 병사 3000명을 이끄는 감주 참장(오늘날 준장급)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