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어설픈 역사강의.. (1592년~) 임진왜란 중에서

백삼/이한백 2014. 9. 13. 10:08
어설픈 역사강의.. (1592년~) 임진왜란 중에서

 

 

 

임진왜란(1592) 이 일어나자 일본은 3개의 부대로 나뉘어서

 

파죽지세로 한양과 평양을 탈환하고 명나라를 거쳐서

 

인도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이 지진이 나니까

 

자신들의 도읍을 도쿄가 아닌

 

한양으로 하자는 말을 하기도 했었지요.

 

한양을 버리고 선조가 도망을 가자

 

백성들이 성이 나서 궁궐을 태웠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군이

 

도성을 침공해서 들어와 백성들의

 

집과 임금이 사는 대궐인 궁궐에 불을 질렀던 겁니다.

 

그리고 나서 역사를 왜곡해서 일제시대 때

 

왕이 도읍인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자

 

백성들이 성이 나서 궁궐을 불질렀다는

 

거짓된 역사관을 날조해서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되고 잘못된 역사관을 일제식민사관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은 전라도 지방의 곡창지대를

 

절대로 일본에 내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였고

 

적에게 한번씩 빼았겼다가 평양과 한양을 일본에게서 되찾은 뒤에

 

이것을 다시 빼앗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을 껍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이 주로 평양이나 한양을 공격하기 위해서

 

주로 일본 본토에서 배를 이용해서 해상으로 보급물자를

 

실어서 나르는데 대부분 반나절이면 되는 거리의 이 해상루트를 봉쇄하게 되면

 

일본의 해상물자보급로가 끊겨버리기 떄문에

 

전쟁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껍니다.

 

 또한 전라도의 곡창지대로

 

가는 입구를 봉쇄해버리면 적의 수중에 식량이

 

들어가지 못하는데다가 추가적으로

 

곡창지대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코 전쟁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정의 대신들과 선조는 대단히 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오늘날 21세기의 2014년 한국정치와

 

당시의 정치가 사실 별로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조정의 대신들과 선조는 의병장인 곽재우나 김덕령과 같은

 

의인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전공을 자신들이 다 가로채버렸고

 

이순신의 위대한 공로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와 대부분의 조정대신들은 명백하게


이순신을 버렸었고 의병장이었던 곽재우와 김덕령도 마찬가지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덕령은 모함을 받아서 비참하게 죽었고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곽재우도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산으로 들어가서 산에서 평생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순신의 경우는 더 심해서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이순신을 불러서


고문을 가하더니 전세가 불리해지니까 다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한창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이순신을 다시 불러내서 고문을 가하더니


백의종군하라면서 다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라고 했었습니다.

 

이순신 본인 자신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살아남는다고 하여도

 

조정 대신들과 선조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옷을 벗고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전사하셨지요...ㅠㅠ 하지만 이순신은 전사하셨다고 하기 보다는


자살을 선택하셨다고 보는 편이 더 옳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죽으나 이 노량에서 살아남은 들 조정대신들과 선조가 자신을


살려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계셨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