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 임금에게 보낸 서신 내용은 예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만하였다. 서신의 내용을 보면 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간파쿠(關白) 히데요시는 조선 국왕 각하에게 바칩니다. 보내신 글은 감동스럽게 읽고, 재삼 펼쳐서 보고 접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60여 주는 근래 여러 지역으로 분리되어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대대로 내려오는 예의를 져버리며 조정의 정사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내가 분함을 견디지 못하여 3, 4년 사이에 반신과 적도를 토벌하여 먼 지역과 섬들까지 모두 장악하였습니다.
삼가 나의 지나온 자취를 살펴보건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일개 신하였지만, 일찍이 어머님께서 나를 잉태할 때에 해가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복술사가 ‘햇빛이 비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커서 필시 팔표인풍(八表仁風, 팔표란 팔방의 아주 먼 끝. 인풍은 어질고 덕스러운 교화)을 드날리고 사해에 용맹스러운 이름을 떨칠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이토록 기이한 징조로 말미암아 나에게 적대심을 가진 자는 자연 기세가 꺾여 멸망해갔는데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빼앗았습니다. 이제 천하를 평정한 뒤로 백성을 어루만져 기르고 외로운 자들을 불쌍히 여겨 위로하니, 백성들이 부유하고 재물이 풍족하므로 지방마다 바치는 공물이 전보다 만 배나 늘었으니, 본조의 개벽 이래로 조정의 성대함과 수도의 장관이 오늘날보다 더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오래 산다 해도 예로부터 백 년을 넘지 못하는 데 어찌 답답하게 이곳에만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라가 산과 바다로 막혀 멀리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한 번에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풍속을 4백여 주에 심어 놓고, 교토의 다스림과 교화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귀국이 앞장서서 입조한 것은, 앞일을 깊이 헤아린 처사이므로 이제는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먼 곳의 작은 섬에섬에 있는 무리라도 늦게 복속해온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대명에 들어가는 날 사졸을 거느리고 군영에 나온다면 더욱 이웃으로서의 맹약이 굳게 될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삼국에 아름다운 명성을 떨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방물은 목록대로 받았습니다. 몸을 보중하고 아끼십시오. 불선.
1590년 음력 11월 일본국 간파쿠 히데요시.
이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나(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태양의 아들이므로 모든 전투는 다 이긴다. 둘째, 나는 명나라를 쳐들어갈 것이다. 셋째, 조선은 자발적으로 일본의 통치하에 복속했으므로 쳐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단, 명나라를 정벌하는 데 앞장을 서라” 등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얼마나 얕잡아보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서신은 사실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대해 명백하게 선전포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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