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처녀작에관한 논쟁

백삼/이한백 2014. 6. 25. 09:43

줄기차게 이어진 여성권위 신장론자(feminist)들 덕분에, 성차별적인 표현을 반성하고 중립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제 사람들 사이에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성년 여성을 뜻한다. 

그런데 처녀가 붙은 다양한 합성어들이 여성만의 순결을 강조한다는 시각으로 비춰져 성차별적 언어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처녀림(處女林)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다. 처녀림 대신 원시림으로 바꿔 쓰고 있다. 

또 수컷에 의한 수정 없이 개체를 만드는 생식 방법을 처녀생식이라 했지만 단성생식으로 바꿔 쓰고 있다. 

처음으로 지었거나 발표한 문학·예술 작품을 처녀작(處女作)이라 하지만 데뷔작(Debut 作) 혹은 그냥 첫작품으로 쓴다.  



그런데 왜 처녀작은 있고 총각작은 없는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성을 뜻하는 ‘총각’은 이런 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총각의 총은 거느릴 총, 각은 뿔 각 

곧 소나 양 떼를 지키는 목동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처녀작의 처녀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는 의미의 순결이란 뜻보다

앞으로 더 잘되라는 축복과 신성성을 더한 표현으로 쓰여졌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영어의 virgin이라는 단어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태고의, 풍요로운, 낙원의" 원래 뜻에서 maid(처녀, 가정부)의 의미로 좁혀졌다. 즉 성모 마리아 Virgin Mary 란 말과, 미국 버지니아주(Virginia)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풍요로움을 알리는 첫 시작, 생명의 기원의 의미였으나 단순하게 여성의 자궁, 혹은 여성성, 순결만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로 퇴색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성(姓)을 신성히 여기던 문화가 부끄러운 것, 추한 것으로 여겨 버리게 된 인식의 변화가 한 몫을 했다. 


  여성성(女姓性)에 대한 첫 의미는 생명의 잉태다. 그래서 여성은 세상 만물을 키워내는 대지와 비유되었고, 생명의 기원이자 첫 시작점임과 동시에 그 생명에 대한 경외, 이 후 일어날 축복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것이 더해졌다. 그런 여성성은 화난 아버지를 감싸 안고 못난 아들을 달래는 포옹력을 더해 모성(母性)이 되었다. 그래서 신화를 보면 제물을 바칠때 처녀를 바치거나 여자아이를 바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즉 화난 것을 달래는 것은 여성성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성화의 첫 점화도 여성이 하는 것은 시작의 의미이고, 삼신 할머니는 있어도 삼신 할아버지가 없는 것은 기원의 의미다. 

 여성은 곧 시작이고 생명이다. 풍요로움이며 축복이다. 평화고 포옹이며, 사랑이며
 돌아갈 품이다. 그런 뜻에서 처녀란 말은 여성성을 상징한 말이며 이는 세례와도 같은 말이다. 그것은 결혼의 유무와 관계되어 좁혀진 처녀로 인식되는 것은 지금의 성인식이 가져온 폐해일 뿐이다. 




  이제 다시 처녀림, 처녀항해, 처녀작 같은 말들을 보자. 그곳에 담겨진 축복과 시작의 의미가 동시에 보이는가? 
오히려 결혼한 아줌마는 부정타고, 결혼안한 처녀가 신성하다는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그런 차별적 단어

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지만 처녀작 같은 말들을 통해 원래 의미를 자꾸 되새겨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줄기차게 이어진 여성권위 신장론자(feminist)들 덕분에, 성차별적인 표현을 반성하고 중립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제 사람들 사이에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 덕분에 이것이 단순히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역할이 여자도 남자도 크게 잘못되어진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했다.  

  처녀작에 관한 논쟁은, 그 단어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 결국 여성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크게 잘못 되어가고 있단 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단어가 사라지든 존재하든 여성권위신장론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과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모두 인간 존엄과 존중의 길임을 잊지 말자. 





 출처 : http://ggagddugi.tistory.com/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