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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보란 무엇인가?

백삼/이한백 2014. 6. 9. 10:04

진짜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인류의 상호작용 수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바깥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결실은 문명의 발전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인류의 소통능력이다.


 

    인류의 소통을 가능케하는 두 가지 힘은 능력과 매력이다. 전자는 주로 경제력이고, 후자는 주로 지식의 힘이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실상 돈을 가진 자와 지식을 가진 자의 싸움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는 둘 다 필요하다. 만약 경제가 없다면 인류는 고립되어 있으면서 서로 소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지식이 없다면 역시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돈보다 지식이다.


 

    돈은 필요한 것일 뿐 실제로 소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고 지식은 실제로 소통을 이루게 한다. 물론 둘 다 갖추는 것이 가장 좋다.


 

    ◎ 진짜 진보 – 능력 + 매력 .. 현장에서 활동하는 진보
    ◎ 가짜 진보 – 매력뿐 .. 강단에서만 떠드는 진보
    ◎ 가짜 보수 – 능력뿐 .. 자수성가한 부자
    ◎ 진짜 보수 – 무기력 .. 종교집단 

 

    이에 네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능력과 매력을 갖춘 진짜 진보와 매력만 있는 가짜 진보, 능력만 있는 가짜 보수, 그리고 매력도 능력도 없는 진짜 보수가 있다. 이들 사이에 비례식이 성립한다.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가짜 진보와 가짜 보수의 대결이다. 이들은 적어도 한가지씩 무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무기를 강조하고 상대편이 가진 무기를 깎아내린다.


 


 

    가짜보수가 강조하는 능력은 의사결정능력과 협력하는 능력이다. 진보는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아무런 결정도 못하는 일이 많다. 또 진보당의 난맥상처럼 확실히 협력플레이가 안 된다.


 

    보수는 돈으로 급수를 매기므로 1초만에 서열이 결정된다. 돈 많은 자가 보스다. 보스 위주로 결정하므로 의사결정이 쉽다. 물론 그 결정이 옳다는 보장은 전혀없다. 4대강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짜진보가 강조하는 매력은 첫째 사교능력이고 둘째 창의능력이다. 매력도 넓은 범주에서는 능력에 포함되지만 더 인간적이다. 보수들은 사람을 적대하므로 사교능력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싫어한다.


 

    여기서 사교를 남녀간의 사귐으로 좁혀 해석할 이유는 없다. 모든 문화, 예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사용된다. 그것이 사교다. ‘social’의 원래 의미는 ‘사귄다’는 뜻이었다.


 

    보수는 지식이 없어서 창의하지 못하므로 진보가 창의한 것을 훔친다. 박근혜의 선거전략 상당수가 문재인의 것을 표절한 사실이 그렇다. 확실히 사람을 끄는 능력과 창의력은 진보가 앞선다.

 

 

    이들 두 그룹의 상호작용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 순수한 보수는 능력도 없고 매력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사람이거나 어떤 이유로 사회의 주된 흐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사람이다.


 

    시골 할아버지들이 보수인 이유는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전방위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집단은 자기네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내부에서 소통하므로 이미 목적이 달성되어 있다.


 

    진보의 목적이 소통에 있다면 종교집단은 사회와 격리된 채 별도로 자기네들만의 특별한 소통구조를 건설해놓고 있다. 이미 진보해놓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집단이야말로 진짜 보수라 하겠다.


 

    물론 새로운 소통의 지평을 열어젖히려는 진보 목사도 많다. 종교도 탄생시점에는 본래 소통의 목적을 가졌으므로 진보였다. 예수는 확실히 진보주의자였다. 그러나 종교집단의 속성은 보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보수와 가짜진보를 비교하면 한쪽은 능력이 있고 다른쪽은 매력이 있어서 서로 비등하다.


 

    그러나 진짜 진보와 진짜보수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진짜 진보는 매력과 능력을 다 갖추었고 진짜 보수는 매력도 능력도 없다. 이는 젊은이와 늙은이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보수 경제인과 진보 지식인이 대결하면 서로 일장일단이 있어서 논쟁은 결말이 없이 끝없는 평행선을 그린다. 그러나 젊은이와 늙은이가 대결하면 아무래도 젊은이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것과 같다. 싸이의 노래를 젊은이는 지지하고 늙은이는 반대한다면 어느 쪽이 옳을까? 여기서 지지할 권리는 있어도 반대할 권리는 없다. 반대는 애초에 권리가 없는 거다.


 

    누군가를 좋아할 권리는 있어도 싫어할 권리는 없다. 싫으면 싫어할게 아니라 채널을 돌리는게 맞다. 중요한건 소통이다. 소통하든가 소통하지 않든가이지 남의 소통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예컨대 어떤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면 박수를 쳐주거나 아니면 발길을 돌릴 일이지 ‘이 결혼 반댈세’ 하며 참견할 권리는 없다. 찬성하거나 아니면 떠나거나다. 기표지에 반대표시 하는 칸은 없다.


 

    그렇다. 정답은 소통이다. 소통은 지지만 가능하고 거부는 없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는 일은 없다. 정답은 진보다. 오직 옳은 진보와 틀린 진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보수도 넓은 의미에서 진보에 포함된다. 진보와 보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과적으로 진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열이 있다. 이를 인도의 사성계급에 비유할 수 있다.

   


 

    구단주는 능력과 매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능력으로는 비싼 선수를 데려오고, 매력으로는 인기구단을 만든다. 구단의 인기가 있어야 많은 관중을 동원하여 적자를 메울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매력만 있으면 된다. 유능한 감독이라면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 능력은 돈을 뜻한다. 돈이 많아야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만 잘 이끌면 된다. 그것이 매력이다.


 

    선수는 단지 능력만 있으면 된다. 능력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능력도 없고 매력도 없으면 후보선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구조는 인도의 사성계급과 비슷한 패턴이다.


 

    브라만은 종교적 소통능력을 가졌다. 크샤트리아는 정치를 해서 사람을 규합했고 바이샤는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브라만이 지배계급이 된 것은 종교적 소통능력으로 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통치의 요체를 세(勢), 법(法), 술(術)이라 했다. 브라만은 세를 가졌고, 크샤트리아는 법을 가졌고, 바이샤는 술을 가졌다. 세는 폭넓은 소통이고 법은 시스템이고, 술은 법의 운용이다.


 

    세는 깨달음이고, 법은 진보의 합리주의고 술은 보수의 실용주의다. 이들은 엄연한 차별이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했지만 진보와 보수는 평등한 두 날개가 아니다. 법이 앞서고 술이 따른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796&docId=1633720&mobile&categoryId=1547


 

    “조보(造父)가 밭을 갈고 있는데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마차를 타고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말이 놀라 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들이 마차에서 내려 앞쪽으로 말을 끌고 아버지는 뒤에서 마차를 밀었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조보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보가 마부의 자리에 앉은 다음 고삐를 잡고 채찍을 드니 말이 가기 시작했다. 조보에게 말 다루는 기술이 없었다면 뒤에서 마차를 밀었을 것이다. 그 경우 말은 계속 버티고 마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조보가 마부의 자리에 편히 앉은 것은 그에게 말 다루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한비자]”


 

    진짜 진보는 세를 주장하고, 가짜 진보는 법을 주장하며 가짜 보수는 술을 주장한다. 법은 노무현의 원칙과 같고 술은 명박의 꼼수와 같다. 세는 상황에 따라 법과 술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세는 마부의 자리에 앉아 지휘하고, 법은 앞에서 말고삐를 잡아 당기며, 술은 마차 뒤에서 민다. 세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법은 카센타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며, 술은 하역장에서 짐을 싣는다.


 

    진보와 보수는 평등하지 않다. 세와 법과 술은 평등하지 않다. 세는 설계를 하고 로열티를 챙긴다. 법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한다. 술은 시장에서 판매한다. 사회는 술에서 법으로 세로 진보한다.


 

    한국은 술에서 법으로 진보하려 한다. 그러나 아직 세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이태리가구와 핀란드가구의 차이를 모른다. 스타벅스의 상술을 비난하지만 스타벅스의 집금비결을 모른다.


 

    냥모님의 강의를 참고하면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그렇다면? 커피통을 판다. 무엇인가? 비유하면 바이샤는 자판기 커피와 같고, 크샤트리아는 에스프레소와 같고 브라만은 커피통과 같다.


 

    커피를 파는건 하수다. 커피의 문화를 파는게 고수다. 바이샤는 값싼 커피를 팔고 크샤트리아는 맛있는 커피를 판다. 브라만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커피를 파는 척 할 뿐이다. 센스를 판다.


 

    중요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당신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이다. 자판기 커피로는 대화할 수 없다. 에스프레소라면 맛으로 대화할 수 있다.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커피가 소통의 주인공은 아니다. 중요한건 당신이 누구냐다. 스타벅스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 방법은 당신이 움직이는 동선의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스타벅스는 당신이 움직이는 동선을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었고 당신은 거기에 홀려서 돈을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한비자가 말한 세(勢)의 방법이다. 소통의 힘이다.


 

    정답은 소통이다. 소통되는 정도에 따라 급수가 있다. 급수로 따진다면 진짜 진보는 챔피언이 되고, 가짜 진보는 도전자, 가짜 보수는 후보생, 진짜 보수는 나머지 찐따그룹에 해당된다 하겠다.


 

    진보와 보수는 대등하지 않다. 진보가 위고 보수가 아래다. 진보는 이끌고 보수는 따라간다. 사회가 보수화 되는 것은 진도를 못따라가서다. 아프리카처럼 민도가 떨어지면 따라가기 어렵다.


 

    아프리카는 소통할 수 없다. 일단 항구가 없다. 이단 도로가 없다. 삼단 언어와 문자가 없다. 사단 역사가 없다. 오단 지적 자원이 없다. 그러므로 소통이 안 된다. 진보가 이념으로 되지는 않는다.


 

    뚫려야 진보된다. 길이 뚫리고 역사가 뚫리고 문화가 뚫리고 지식이 뚫려야 한다. 현장에서 뚫지 않고 말로만 진보타령을 한다면 거짓이다. 가짜 진보다. 현장에 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 가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수는 없다. 다만 진보가 있는 것이고 그 진보의 급수가 있고 급수가 떨어지는 사회성의 지진아들을 보수라 일컫는다. 널리 소통이 되면 진보이고 소통이 막혀 있으면 보수다.


 

    간단하다. 말이 안 통하면 보수다. 자칭 진보집단 안에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짜 진보다. 말이 통해야 진보다. 문화도 통하고 오락도 통하고 패션도 통하고 널리 통해야 진보다.

 

    ◎ 우리는 인류 상호작용 총량을 증대시킨다.
    ◎ 우리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바깥뇌를 건설한다.
    ◎ 우리는 세를 이루어 법과 술을 거느린다. 
    ◎ 세는 깨달음, 법은 합리, 술은 실용이다.
    ◎ 우리는 세상을 새로 디자인한다.

    우리는 진짜 진보를 주장한다. 진짜 진보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의 상호작용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바깥뇌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인류는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의 능력을 얻는다.


 

    인류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세를 이룬다. 그것이 문명이다. 위키피디아와 같다. 공공 도서관과 같다. 지식이 나의 뇌 안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뇌 바깥에 공동의 지식센터를 보유한다. core를 이룬다.


 

    그런데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풍속과 매너와 에티켓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진짜 진보는 총체적 진보여야 한다. 영화, 예술, 패션, 디자인, 건축, 조형을 망라한다.


 

    사회의 모든 부분을 전방위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가 사회운동만 한다고 본다면 참으로 편협한 사고다. 낸시랭이나 강의석이 그 어떤 자칭 진보주의자보다 더 진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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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勢)와, 법(法)과, 술(術)이 있습니다. 이들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세가 앞서가며 길을 열고, 법이 뒤따르며 판을 짜고, 술이 맨 나중에 그것을 운영합니다. 기존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법과 술의 대결입니다. 우리는 앞서가야 합니다. 우리는 발견하고 진보는 발명하고 보수는 판매합니다. 이들 세 포지션은 서로 대립하는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며 일이 진척되는 정도에 따라 기승전결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에 서는 사람입니다. 우리편에 가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