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김성근감독 wbc감독 고사관련 기사

백삼/이한백 2013. 12. 12. 10:11

동희의 오프시즌 MaigBag’에서는 2009시즌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야구계의 뒷이야기를 연재하려 한다. 설령 알려진 이야기라도 잘못됐거나 과장된 사실이 있으면 바로 잡자는 게 연재의 의도다. 1편은 SK 김성근 감독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직을 고사한 이유다.

Q. SK 김성근 감독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직을 고사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김상정 외 2,980명

A. 개 인적으로 흥미로운 집계를 해봤습니다. 올 시즌 독자분들이 <스포츠춘추> 앞으로 보내신 이메일 가운데 어떤 질문이 가장 많았는가를 분석해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질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눈치채셨겠지만 단연, SK 김성근 감독의 WBC 감독직 고사 이유를 묻는 말이 가장 많았습니다. 무려 3천 통에 가까웠습니다.

< 스포츠춘추>는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김 감독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답변 역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하면 WBC 수장을 맡은 김인식(전 한화)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김 감독의 청으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독자분들께 답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점 독자분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10 월 29일 김 감독은 <스포츠춘추>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일을 떠올리며 “이제는 밝혀도 좋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차후 공개될 <박동희의 베이스볼 2.0 ‘야구는 30m의 미학(美學)’편>에서 김 감독의 WBC 감독직 고사와 관련한 부분을 발췌 게재합니다.


감독님의 WBC 감독직 고사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감독님은 “몸이 좋지 않다”란 말로 거절의사를 분명히 밝히셨고요. 하지만, 야구계에선 “건강보다는 절차상의 문제로 김 감독이 거절한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김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아달라고 할 때 좀 더 격을 갖추고, 제대로 된 과정을 밟았어야 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어 느 야구인은 “KBO에서 SK 신영철 사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신 사장이 김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는 게 어떠냐?’라며 권하는 게 가장 자연스런 절차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2달 동안 소속팀을 비워야 하는 감독이 덜 부담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일전 <네이버 스포츠 Q>에서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에게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니 “김 감독 입장에선 (절차상의 문제가) 잘못됐었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잠시 침묵하다가) 바로 그거에요. 그때는 지금처럼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는다는 합의가 없었어요. 감독들끼리 구두로만 이야기를 했지. WBC 감독을 누가 해야 하는지 문서로 밝히지도 않았어요. WBC 감독 이야기가 나올 즈음,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을 만났어요. 난 사실 두산 김경문 감독이 맡을 줄 알았어요. 실제로 하 전 총장이 몇 번이나 김 감독을 찾아가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김 감독이 끝끝내 거절하니까 나한테 찾아온 거예요. 처음엔 그게 기분 나빴어요.

KBO 윤동균 기술위원장도 찾아오지 않았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어요. 윤 위원장과 모 호텔에서 만났어요. 보자마자 그래요. “형님이 좀 맡아주십시오”라고. 내가 그랬어요. “김경문이가 있지 않으냐?”라고. 그러니까 “걔가 안 하겠답니다”하는 거예요. 그때 속으로 ‘그럼 그 친구가 하지 않으니까 나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한 어조로) 이건 프라이드의 문제에요. 팀과 나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어요. 그래 “나도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윤 위원장에게 “절차가 왜 이러느냐?”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몸이 좋지 않다”란 말로 거절했어요.

그러니까 윤 위원장이 물러나던 가요.

아니에요. 그러고 있는데 윤 위원장 휴대전화로 하 전 총장 전화가 왔어요. 윤 위원장이 날 바꿔주더라고. 하 전 총장이 “형님 진짜 안 하실 겁니까?” 하더라고. 그때 내가 하 전 총장에게 확실히 말했어요. “이런 결례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이지.

그날 윤 위원장이 헤어지면서 무슨 말을 하던가요.

윤 위원장이 “다시 오겠다”고 하더라고.

다시 찾아 왔습니까.

아니요. 다신 오지 않았어요.

만약 다시 왔다면 승낙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OK'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혀를 차며)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김인식(전 한화) 감독으로 발표가 나더라고.

썸네일

제2회 WBC 당시 준결승 베네수엘라전에 승리하고 난 뒤 김인식(사진 좌로부터) 감독과 김태균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SK 신영철 사장도 WBC 감독직과 관련해 KBO로부터 양해를 구하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하던데요.

나도 사장님께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있느냐?”라고 물었어요. 뭐라고 하시던데 연락받은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1년 동안 WBC 감독 고사와 관련해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박 기자도 잘 알잖아요. 내가 그때 말 안 한 이유를. 만약 내가 입을 열었으면 그건 김인식 감독한테 큰 결례였어요. 예의가 아니었다고. 그때 (김)인식이가 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형 왜 안 맡으려고 그래?”라고. 그래 “몸이 아파서 그런다. 미안하다”라고 했어요. 그때 인식이가 내 마음을 울리는 말을 했어요.

무슨?

“아니 형, 그럼 내 다린 어떻게 하라고”…. (잠시 침묵하다가) 순간 ‘아, 내가 잘못했구나!’ 싶었어요. ‘인식이한테 큰 죄를 지었구나!’ 싶었어요. 그때부터 인식이와 무지 가까워졌어요.

결국, 김인식 전 감독은 WBC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고도 소속팀에서 물러나는 고통을 맛봐야 했습니다.

인 식이가 물러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로서는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었어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때 WBC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KBO와 WBC 감독을 맡으라고 요구한 한화와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내달라고 부탁한 대전 시민들은 뭐가 됐나 싶어요. 구단 고문은 시켜줬다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 싶어요.

1964 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때 어머니께 “반드시 한국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하겠다”고 약속하신 걸로 압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하고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하셨는데요. 만약 국가대표 감독 제의가 절차상의 하자 없이 다시 온다면 맡을 의향이 있으십니까.

(한참 생각하다가) 내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 감독은 조범현(KIA) 감독으로 결정된 거고.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로 한 거니. 때가 되면 차례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67살 야구감독의 마지막 꿈이 무얼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지 금 이야기하면…. (가늘게 눈을 뜨며) WBC 감독을 하고 싶었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김인식이란 사람이 맡았으니까 그만한 성과가 나왔지 않나 싶어요. 인식이가 WBC 끝나고 귀국했을 때 제가 그랬어요. “정말 수고했다. 고마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