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템플은 1928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의 유복하고 원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딸을 눈여겨본 모친은 딸이 세 살 되던 해에 무용학교(Meglin's Dance School)에 입학시켰다. 1933년 20세기 폭스의 전신인 폭스 필름의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7년 계약을 맺고 영화 《Stand Up and Cheer!》로 데뷔했다. 템플의 두 번째 영화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Little Miss Marker》는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여덟 살이 될 무렵에는 1년에 5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다.[1] 당시 미국은 대공황을 맞아 경제가 침체되어 있었지만 셜리 템플을 모델로 한 인형과 각종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그녀의 브랜드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미국에 셜리 템플이 있는 한 우리는 괜찮을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할 만큼[2] 셜리 템플은 당시 미국의 상징이자 희망이었다. 템플은 일곱 살 때 아카데미상 아역상을 수상했으며 클라크 게이블,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 유명 배우들을 누르고 3년 연속 박스 오피스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1] 나이가 들면서 아역 배우의 대명사였던 템플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그녀는 17세에 잭 애거(Jack Agar)와 결혼, 21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딸 린다 수잔(Linda Susan)을 두었지만 4년 후 이혼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가나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2] 1972년에는 공개석상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음을 밝히기도 했다.[2] 2006년 미국배우협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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