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4> 김구의 밀정, 한도원
상하이 시절 한도원 집에서 권총 만지다가 오발 사고
16년 만에 상봉 “네가 복중 그 아이라니…” 감격
“이제 네가 17세가 됐고, 옛 일을 자세히 생각해 보니 몸에 소름이 돋는구나(今汝十七歲 细想舊日事不覺身生粟).”
1930년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 허름한 집. 슬그머니 입장한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평소 친분이 있던 동포 한도원(1906~1984년ㆍ애국장) 지사에게 한 끼 식사를 청했다. “식사는 직업을 가진 동포 집에서 걸식하니 거지는 상등 거지다”(백범일지)라 할 만큼 궁핍했던 시절. 한국독립당 창당 직후로 민족주의와 무력 항쟁을 독립운동의 노선으로 정했던 김구는 늘 품속에 권총 한 자루를 지니고 다녔다. 그렇게 식사를 기다리며 총기를 어루만지던 중 갑자기 ‘탕!’ 하는 총성이 울렸다. 자신의 총에서 오발탄이 터진 것. 사색이 된 김구는 식사를 내팽개치고 급히 집 밖으로 몸을 피했다. 이윽고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경찰이 “무슨 일이냐”고 쏘아붙이자 한도원은 “청소할 때 무언가 건드려 소리가 난 것”이라며 둘러댔다. 이후 김구의 가슴 한구석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자리했다. 당시 식사를 준비하던 한도원의 아내(홍성실ㆍ1908~1958)가 임신 상태로 총소리에 놀라 유산하지 않았을까 걱정됐던 것이다. 그 후 김구는 경찰의 의심을 피하고자 한도원의 집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한 지사는 전차회사에서 일하며 병인의용대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추후 김구의 지령을 받들어 일제 경찰 측에 접근해 밀정 역할을 했다.
16년 뒤, 김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다. 1946년 8월 7일(음력 7월 11일) 음력 생일에 그가 머물던 서울 종로구 경교장(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다.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지 불과 한 달여가 지난 이 날 김구는 엄마(한도원의 아내 홍성실) 손을 잡고 자신을 찾아온 17세 한순옥을 마주하고 얼어붙었다.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 소녀가 다름 아닌 16년 전 상하이에서 오발탄에 생사를 걱정했던 복중 아이였던 것.
소녀가 당시 오발탄 에피소드를 줄줄이 읊자 그제야 김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너로구나!” 상기한 표정의 김구는 갑작스레 선물을 준비했다. 특유의 동그란 안경과 두루마기 차림의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사진을 찍은 뒤 여백에 소녀와의 만남에 대한 감정을 거침없이 내려 적었다. 김구는 “한순옥 세손(世孫)에게 주노라”라고 시작되는 이 글에서, “너희 집이 상해에 있을 때, 총기를 가지고 놀다가 오발이 됐을 때 너는 아직 뱃속에 있었다”라며 “하지만 하늘이 준 큰 행운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적었다. 이어 “이제 네가 17세가 됐고, 예전 일을 세세히 생각해 보니 내 몸에 소름이 돋는다”라고 했다.
올해 아흔을 맞은 한순옥 할머니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김구 선생이 오발 사고를 내고 나서 도망간 뒤 우리 집에는 오시지 못하고 걱정이 돼 ‘한도원 마누라 별일 없느냐’고 이웃들한테 많이 물어보셨다고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1946년 8월 7일) 만나 뵈니 너무 반갑다며 글귀를 써주시고 공부하라 학비도 대주셨어요. 내가 노래를 잘하니까 나중에는 정훈모 서울대 음대 교수님을 소개해줘 공짜로 음악을 배우게 해주셨지.” 한 할머니는 김구의 친필과 사진이 담긴 A4크기의 인화지를 다듬어 70여 년을 보물처럼 보관해오고 있었다.
한국일보가 국내 언론 최초로 공개하는 김구 선생의 해당 친필 메모와 사진에는 1930년 당시 궁핍과 일제의 감시망을 마주하며 임시정부를 힘들게 이끌던 김구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한 상하이 거주 동포들의 집을 넘나들며 식사를 구했던 그가 한순옥씨에 남긴 따뜻한 글귀는 당시 독립운동가들과의 관계는 물론 김구의 성품과 글쓰기 방식 등을 낱낱이 보여준다.
김구 연구 전문가인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한순옥 세손이라고 적었는데 1대손, 2대손처럼 가족같이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한도원 가족과)아주 각별한 사이였던 게 분명하다”라며 “특히 글귀 마지막에 ‘소름이 끼친다’는 표현을 ‘신생속(身生粟ㆍ몸에 좁쌀이 돋는다)’라는 글귀로 나타냈는데 김구가 이런 비유를 쓴 건 거의 처음 볼 정도로 아주 희귀하다”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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