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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사가 축사 시작하자.. 등 뒤에서 탕! 탕!

백삼/이한백 2016. 12. 21. 10:09
[러시아 대사 8발 쏜 저격범 "시리아 알레포를 잊지말라"]
터키 경찰, 미술관서 총격살해..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에 불만
푸틴 "테러리즘과 전쟁 강화"
경찰 신분증으로 보안검색 통과
현장서 사살.. "알카에다 개입"
숨진 대사, 한때 한국·북한 근무

19일 오후(현지 시각)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 미술관.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이곳에서 열린 러시아 사진 전시회 축사를 시작하자 등 뒤로 한 젊은 남성이 접근했다.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깔끔한 차림의 남성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등을 향해 연달아 8발을 쐈다.

행사 참석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렸고 카를로프 대사는 쓰러졌다. 범인은 총을 든 손을 휘두르며 "신은 위대하다" "시리아 알레포를 잊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AP통신 사진기자 버한 오즈빌리치는 "평화롭던 행사장이 순식간 지옥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는 "축사를 시작한 러시아 대사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가려는 순간 빠르게 이어진 총소리가 들렸고, 내 눈 몇m 앞에서 대사가 쓰러졌다"고 했다.

이어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고,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기둥이나 책상 뒤로 뛰어들거나 바닥에 엎드렸다"고 했다.

범인은 범행 직후 행사장 참석자들을 향해 큰 소리로 설교를 했다. 그는 "우리는 선지자 무함마드에 충성을 다짐했고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수행한다"며 "(시리아 알레포) 공격에 관여한 모든 이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오즈빌리치 기자는 "처음에 몹시 흥분했던 범인은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이더니 관람객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이후 경비원이 사람들에게 행사장을 나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터키 특수부대는 그를 현장에서 사살했다. 카를로프 대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터키 내무부는 범인이 앙카라 경찰청 폭동진압팀 소속 메블루트 메르트 알틴타스(22)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신분증을 제시하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BBC 등 외신들은 "그가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점령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터키 언론은 범인이 시리아 반군 핵심 세력이자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지부인 '알 누스라'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터키 양국 관계에 대한 도발이자 비열한 범죄"라며 "전 세계가 테러리즘과 전쟁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증거"라고 했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은 최근 러시아의 대대적 공습 지원과 이란 민병대 등의 도움을 받아 반군이 점령했던 알레포 동부 지역을 4년 반 만에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반군 지역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반군을 지원하던 터키에선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매일 벌어질 정도로 반러 분위기가 거셌다. 이날 저격은 이런 터키 내 반(反)러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를로프 대사는 40년간 외교관으로 일해온 정통 외무 관료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외교관 양성 전문인 명문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 출신으로 10년 이상 북한 주재 소련 대사관에 근무했고, 2001년부터 5년 동안은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로 재직했다. 옛 소련 해체 직후인 1992~1997년에는 한국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