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연미복 입은 고종황제
일본식 병풍을 배경으로 고종이 연미복을 입고 앉아있는
만년의 모습이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봉고제에 참석한 인사들.
봉고제에는 야마가타 이사부로 정무총감을 비롯하여 각계 대표 인사들이 참석
하였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영녕전 참배의식 중인 영친왕.
1918년 1월15일 삼전의 참배에 이어 16일에는 참배 의식 중 가장 중요했던 종묘
전알이 행해졌다.
순종이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감기로 인해 영친왕 혼자 의식을 진행했다.
영친왕은 종묘 참배를 한 후 뒤에 있는 영녕전에 나아가 참배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남대문에서 동경으로 향하는 영친왕.
13일 동안의 귀국일정을 마친 영친왕이 남대문역에서 거수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동급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덕혜옹주와 동급생, 선생님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덕혜옹주의 하교.
학교를 마친 덕혜옹주가 마차에 오르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인산에 참여한 나인들.
재궁의 봉안을 마치고 내려오는 나인들의 모습.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창경궁 인정전.
창경궁은 조선왕조 태종 연간에 지어진 이래 가장 오랫동안 국왕들이 기거하며
활동했던 궁궐이다.
다른 궁궐들이 그렇듯 창덕궁 역시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
어지거나 변형되어 본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다.
사진은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 이후 1917년 내전 일대에 화재가 발생하
기 이전 창덕궁의 모습이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황실가족사진.
고종을 중심으로 순종과 순정효황후, 영친왕, 덕혜옹주를 담고 있는 이 사진은
1918년 1월21일 촬영된 것이다.
당시 발행된 매일신보는 이 사진에 대해 모두 모여 함께 일본 요리로 식사를 한
후 찍은 사진이라고 전한다.
즉 영친왕의 일시 귀국을 기념하는 가족사진인 것이다.
사진은 덕수궁 석조전 내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세부 장식까지 자세히 엿볼
수 있다.
현재까지 이 사진은 경술국치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귀비엄씨, 덕혜옹주 모습.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석조전 오찬에 나아가는 고종.
가마에 탄 고종이 영친왕 방문 기념 오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배에서 내리는 영친왕.
영친왕이 이하계의 안내로 배에서 내리며 거수경례로 마중 나온 관민들에게 답
하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총독관저 내부로 들어가는 영친왕.
영친왕이 윤덕영 자작(오른쪽)과 총독부 관리들의 인사를 받으며 총독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석조전 오찬 기념사진.
1918년 1월 23일 오후 2시경 영친왕의 귀국을 기념하여 촬영된 사진으로 당시
고종을 비롯한 각계인사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날 기념촬영에는 이왕직 관리들과 중추원 인사들, 총독부 관료들과 일본 군
인과 경찰 고위 관계자들이 참가하여 총 3장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중 이 사진은 일본 인사들이 중심이 된 사진으로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인물
의 면면을 보여준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남대문에 도착한 영친왕.
1918년 1월13일 오후 9시경 남대문역에 도착한 영친왕이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운현궁 양관.
운현궁 내에 자리 잡은 양관은 일본인이 설계 시공한 건물로, 흥선대원군의 손
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의 소유였다가, 해방이후인 1946년에 학교법인 덕
성학원이 소유하게 되면서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사무처로 사용되
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기에 지어진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로 영국인 기사 하아딩(G.R.Hardin
g)의 설계에 의해 1900년말 착공되어 1910년 6월 완성되었다.
1층(반지하)에 시종인들의 거실을 두고 2층에 접견실과 홀, 3층에 황제와 황후
의 침실, 거실을 두었다.
19세기 고전주의적 양식을 답습하여 총 면적 1,264평으로서 일제강점기 전 기간
중 가장 규모가 큰 순석조 건물로 세워졌다.
이후 석조전은 고종이 주로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쓰이다가 1933년부터
창경궁 이왕가박물관의 분관으로서 일본 근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전용
되었다. 뒤이어 1938년 개관된 석조전 신관에 이왕가박물관의 전통미술품이 전
시되고 2동의 건물 모두가 전시장으로 쓰였다.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공간이 전시공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이방자여사와 함께 받은 덕혜옹주의 생일상.
1962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가 생일을 맞아 이방자 여사와 함께 촬영된
사진이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오열하는 궁녀들.
조선 마지막 순종효황후 윤씨의 승하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황실의 궁녀들이 오
열하고 있다.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 조선황실의 기모노 여인 등장.
황실의 궁녀들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성들이 함께 찍은 이 사진은 경술국치 후
촬영한 것으로 사진 속의 일본 여성들은 일본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부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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