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오픈하우스

아티스트 부부의 평창동 오픈 하우스

백삼/이한백 2015. 6. 25. 11:08

아티스트 부부의 평창동 오픈 하우스

건축가 조성중, 디자이너 이영우 부부의 집으로 향하는 길. 가파른 평창동 언덕을 찬찬히 올랐다. 길에서 마주치는 건 한두 명의 등산객뿐, 거리는 꽤 고요하다. 서울에 이토록 유유자적한 동네가 있다니. 이곳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부부의 일상은 동네의 여유로운 모습과 꼭 닮아 있다.

3층에서 이어진 야외 공간은 두 사람의 힐링 플레이스다. 산자락이 이어지는 곳에 개인 공간을 두었다. 게스트를 위한 침실과 거실이 있는 1층 한쪽에는 디자이너인 아내 이영우씨의 간이 작업실이 있다. 커다란 통에 꽂혀 있는 각종 패브릭은 게스트로 하여금 아내의 직업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될 듯하다. 무심하게 꽂아놓은 패브릭이 일종의 오브제처럼 멋스럽다.

외국인 여행자에게 방을 내어준, 예술가 부부의 3층 살림집

여행은 매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것과 같다. 여행지에 당도했을 때부터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 묵게 될 숙소까지 모두 예측할 수 없기에 설레고 긴장되는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에게 숙박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인기가 높아졌다. 낯선 이의 삶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의 또 다른 설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간을 여행자에게 내어주고자 하는 이들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여행자를 매치하는 방식으로, 조성중?이영우 부부 역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그들의 집을 여행객에게 기꺼이 방을 빌려주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누군가는 ‘서울의 할리우드 힐(hill)’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산 높고 물 맑은’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이들의 집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멋진 동네의 후광도 한몫하지만, 건축가인 남편 조성중씨가 직접 지었다는 점이다.

현재 일건건축사무소 소장인 그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위원장으로 활약한 바 있으며, 세계건축가대회에서 12년간 한국 대표를 지내는 등 그간 건축계에서 굵직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아내 이영우씨 역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이신우의 동생인 그녀는 언니와의 작업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영우’라는 브랜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점 삼아 뉴욕, 시카고, 달라스, LA 등지에 자신의 패션을 선보였다.

이들이 에어비앤비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다. 2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브랜드를 일군 젊은 CEO에 대한 뉴스를 보며 20년 전 미국에서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

당시 부부는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각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두 자녀 역시 미국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딸의 졸업식에 맞춰 북동부 지역으로 짧은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 사람의 집을 빌려 지낸 적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를 20년 전에 이미 경험해본 것. 그때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여행객을 맞이한 지 3년째다.

이영우씨는 지금껏 다녀간 수많은 이들 중에서도 첫 번째 게스트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에어비앤비에 집 사진을 올린 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중년의 독일인 부부에게 연락이 왔죠.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교수 남편의 일로 한국을 찾았는데, 분야가 분야인 만큼 저희 남편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의 유학 시절 클래스메이트인 거예요.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서로 얼굴을 잘 못 알아본 거죠. 이런 신기한 우연이라니…. 남편은 뒤늦게 당시 히피스러웠던 친구 알렉산더의 모습을 회상했고, 서로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1각 층을 잇는 좁은 계단은 뚫린 구조라 그 사이로 환하게 빛이 새어 나온다.2에어비앤비를 통해 이곳을 찾은 게스트를 위한 침실.
3손님을 자주 초대할 뿐 아니라 두 사람 역시 커피를 즐겨 마시다 보니 가지고 있는 커피 기기만 여러 대다. 최근 장만한 자동 커피 머신 외에 나머지는 적어도 20년 된것이 대부분이다.420대 때부터 꾸준히 기타를 쳐온 아내와 최근에서야 평소 배우고 싶었던 첼로를 시작한 남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풍경. 부부는 집에 머무를 때면 늘 잔잔하게 음악을 틀어놓는다.

부부가 집을 짓는 법

10년 전, 부부는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앞으로 계속 살 곳을 생각하며 이 집을 지었다. 부부의 집은 평창동 언덕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바로 뒤로는 산이 있고, 아래로는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집을 짓기에 다소 가파른 언덕은 부담일 수 있는데, 조성중 소장은 건축가로서 오히려 이런 요소를 더 흥미롭게 활용했다. 경사지 때문에 실내로 다 들여올 수 없는 부분은 야외 공간으로 두어 뒤뜰의 테라스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종종 평창동 일대 지인들을 모아 바비큐 파티를 연다. 꽤 웅장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실제 집은 한 층에 57㎡(약 17.4평) 정도다. 전체를 반으로 나눠 왼쪽 집은 조카 가족이, 오른쪽 집은 부부가 살며 일종의 타운 하우스를 구현했다. ‘집은 짐이 되어선 안 된다’는 가치를 담아 불필요하게 넓은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나눠 쓸 수 있도록 설계한 것. 이에 대해 조성중 소장은 ‘건축 철학’ 같은 거창한 말 대신 그저 정말 살기 위해 지은 집이라고 설명했다. “예로부터 집은 밝게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뒤가 산이고 앞이 트여 있어 살기 좋은 터에서 지내며 오는 손님을 잘 맞이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집인 것이죠.”

산과 인접해 있으니 공기가 좋은 것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 같은 계절이면 한낮에는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까지 들어오니 그 자체가 힐링이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쾌적해 특히 좋고, 겨울에는 단열을 위해 창문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열이 잘 머물러 있다. 자연 속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햇빛, 바람 등 자연 에너지를 최대한 쓰는 효율적인 건물을 만들고자 한 조성중 소장의 의도가 잘 반영되었다.

아내 이영우씨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부부는 낭비를 지양하는 편이에요. 집을 지을 때도 최소한의 것으로 힘을 줄 곳에만 선별적으로 투자했죠. 지금 있는 가구도 대부분 젊었을 때부터 써온 거예요. 이 식탁도 40년이 됐고, 소파나 다른 큰 가구도 미국에서부터 쓰던 걸 컨테이너에 실어 다 가지고 왔죠.”

이영우씨가 디자이너로 한창 일할 때 사용하던 작업대도 여전히 한 쪽에 놓여 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위에서 디자인 작업을 한다. 덕분에 집안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과 이야기를 담은 물건이 한가득이다.

층별로 독립된 공간을 얻다

3층으로 이뤄진 집은 각 층별로 특색을 지니고 있다. 1층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찾아 온 손님을 위한 침실과 거실이 있고, 1층 거실 한쪽에는 아내가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뒀다. 2층은 부부가 주로 쓰는 메인 거실과 주방, 다이닝 공간으로 이뤄져 있고, 3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남편의 작업실이 있다. 주말이 되면 부부가 따로 또 같이 지낸다며 들려준 라이프스타일이 참 재미있다.

주방이 있는 2층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한 뒤에 각자의 작업 공간이 있는 1층과 3층으로 흩어져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중간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단층 구조의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라 더욱 흥미롭다. 늘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조성중 소장은 한국의 주택 문화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무래도 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각자의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에도 좋은 구조예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개별적인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예전에는 사이사이에 골목이 있어서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골목 문화가 있었죠. 행여나 아이들끼리 싸우면 부모들은 그걸 핑계 삼아 소통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공간이 단절되다 보니 그런 정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워요.”

부부는 이곳에서 산 10년간 일과 취미, 여가 활동을 두루 하며 살기에 최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특히 일에서는 건축과 패션이라는 다른 분야임에도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無’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有’의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꼭 닮아 있어 부부는 평생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새로운 이들과 소통하면서 일상에 더 큰 생기를 얻는 중이다. “남편은 아직도 아침 7시 반이면 사무실로 출근을 해요. 평생 이어진 습관이죠. 디자이너 노라노의 다큐멘터리에서 노라노 선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일하지 않으면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무언가를 하는 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이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 아닐까요.”

거실 한쪽에 나란히 놓인 기타와 첼로를 보니 사이좋은 부부의 금슬이 느껴진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밤마다 집 앞 언덕길을 함께 걷고, 주말에는 집 뒤로 난 북한산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는 두 사람. 무엇을 하든 함께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

1다이닝 공간과 거실이 있는 2층은 많은 이가 함께할 수 있는 곳이다. 식탁 옆으로 난 커다란 창문은 마치 평창동의 경관을 담는 프레임 같다.

2조성중 소장의 취미이자 특기는 사진 촬영이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수십 년 된 필름 카메라인 ‘테크니카 5’가 놓여 있다. 한창때는 아내의 작업 물을 담은 커머셜한 사진을 직접 찍기도 했다.

3젊은 시절 아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모델을 남편이 직접 카메라로 담아냈다. 흑백사진 한 장에서 젊은 시절 두 사람의 열정이 느껴진다.

4공간 곳곳에서 부부의 작업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패션과 건축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부부는 창작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준다.

5조성중 소장의 작업실 일부 모습.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따듯하게 느껴진다.

기획_박주선 | 사진_이과용

여성중앙 2015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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