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

하얀 날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 잉게보르크 바하만

백삼/이한백 2015. 6. 16. 11:21

                                                                       하얀 날들

 

                                                              - 잉게보르크 바하만-

 

 

 요즘 들어 나는 자작나무와 함께 기상하여

얼음으로 만든 거울 앞에 서서

밀 같은 머리칼을 이마에서 빗질해 넘긴다.

 

나의 숨결과 섞이면,

 

우유가 눈송이 모양이 된다.

이런 새벽이면 우유는 쉽게 거품을 낸다.

그리고 창문에 입김을 불면, 거기

어린애 같은 손가락으로 쓴,

너의 이름이 다시 타나난다; 순결함이여!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요즈음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내가 잊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사랑한다. 하얀 불꽃이 될 때까지

나는 사랑하며 천사의 인사법으로 감사한다.

나는 그 인사법을 빠르게 익혔다.

 

요즈음 나는 알바트로스를 생각한다.

나를 등에 태우고 날아올라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땅으로

훌쩍 건너온 그 새를.

 

수평선에서 나는 어렴풋이 느낀다.

찬란하게 침몰하면서,

저 건너편의 동화와 같은

나의 대륙을, 내게 수의를 입혀

자유를 준 그 대륙을.

 

나는 살아, 멀리서 대륙이 부르는 백조의 노래를 듣는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