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바실리 드미트리비치 플레노프의 아름다운 그림

백삼/이한백 2015. 2. 2. 11:21

바실리 드미트리비치 플레노프 (Vasily Dmitrievich Polenov /1844 ~1927)의 그림입니다. 

 

숲길을 산책하는 여인 paziergangerin auf eneiem Waldweg /114.5cm x 67.3cm  

 

가을 속에서 여인이 걸어 나오는 것일까요, 여인의 뒤를 가을이 따라 오는 것일까요?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는데 눈은 자꾸 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초야권    primae noctus / 1874

 

젊은 여자를 대동하고 노인이 영주를 보고자 찾아 왔습니다. 한 눈에 봐도 고약한 인상을 가진 영주는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리고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불안한 눈으로 영주를 쳐다 보고 있는,

가운데 처녀의 눈빛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곧 결혼을 앞둔 처녀가 초야권을 영주에게 바치러 온 것이죠.

중세 스위스에서는 남편이 아내 될 여자의 초야권을 갖기 위해서는 초야세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는 기록도

있다는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성직자나 그 지방의 영주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곳이 많았다고

하지요. 권력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한숨 소리, 음흉한 영주의 웃음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하루를 마감하는 해는 건물의 흰 벽에 불안한 붉은

그림자를 남기고 넘어 가는 중입니다. 그건 그렇고 눈에 거슬리는 개 두 마리 --- 왜 권력자들은 개를 데리고

나타나는 모습이 많을까요? 하는 짓이 개와 닮아서 그런가요?

 

플레노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높은 계급의 장교였고 한편으로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이런 부모의 재능은

두 사람 사이의 아이들이 미술과 과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콩 심으면 콩 나는 것이 맞지요.

숲이 무성한 연못   Overgrown Pond / 1879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디가 낯이 익은 풍경입니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 작은 선착장은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고 우거진 숲의 품에 안긴듯 한 벤치가 보입니다. 숨은 듯 만 듯한 여인은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고요하고 싱그럽습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언젠가 본 듯한 풍경화를 무드 풍경화라고 한다지요.

흰 들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길은 여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이어졌습니다. 조명을 흐리게 하고 음악이 있다고 해서

무드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괜찮으시면 저하고 연못을 천천히 둘러 보시면 어떨까요?

저라면 벌건 대 낮이지만 그렇게 무드를 잡아 보겠습니다.

 

1871, 스물 일곱의 플레노프는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대학을 졸업합니다. 또한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야이로 딸을 일으키심이란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이렇게 되자 플레노프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금메달에 대한 부상은 유럽 여행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었거든요. 몇 달을 고민한 플레노프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하느님도 편애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보트를 타고, 아브람체보      On the boat. Abramtsevo / 1880

 

앞 선 작품 속 여인일까요? 녹색의 한 가운데를 흘러가고 있는 여인에게 마치 무대의 스폿 라이트가 비추는 듯

합니다. 도드라져 보이지만 보트의 색과 주변의 수련으로 점차 엷어 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름 한 철 조금씩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아브람체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철도왕사바 마몬토프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마몬토프는 러시아의

젊은 화가들을 아낌 없이 후원하던 사람이었죠. 때문에 화가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들 중 잠시 머문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눌러 앉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아브람체보파가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1년간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플레노프는 수 많은 스케치와 드로잉을 제작합니다. 그 후 파리에 정착,

4년간을 머무는데 이 기간 동안 플레노프는 역사화와 풍속화, 초상화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합니다.

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은 야외에서 작업하는 프랑스 화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작품에 매료 되었는데, 플레노프가 풍경화에 마음이 기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래 방앗간   Old Mill / 1880

 

숲 속 물방앗간이 한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방앗간 벽에는 군데군데 지나 온 세월의 흔적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한 때는 힘차게 수레가 돌아갔고 사람들 소리로 소란했겠지만 이제는 줄어든 물의 양으로 물레방아는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숲들이 조금씩 대신하고 있습니다. 낚싯대를 물에 드리우고 있는 소년이

보입니다. 방앗간은 움직임의 상징이지만 낚시는 고요함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커서 세상으로 나가고

나면 물방앗간, 저만 혼자 외롭겠습니다.

 

이 때부터 플레노프의 작품 속에는 두 가지 요소가 나타납니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받은 고전 교육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법은 그를 고상한 역사화를 그리는 길로 이끌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풍경화였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요소가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작품 속에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1880년대 후반, 그러니까 30

후반부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불 타버린 숲   The Burnt Forest / 89.7cm x 170cm / 1881

 

예전에는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계층이었지요. 그림 속 숲은 화전의

모습은 아닙니다. 자연 발화로 타 버린 숲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마가 훑었던 지역이었지만 자연은

다시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검게 그을렸던 땅에는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사이사이 나물들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생명력, 그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지요. 나물을 향해

뻗은 여인의 손과 등에서 끝나지 않은 인간의 생명력을 보게 됩니다.

 

5년간의 외국 여행을 끝내고 1867, 서른 둘의 플레노프는 러시아로 귀국합니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터키에 대한 독립을 주장하고 나서자 터키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는 범슬라브족을

보호한다는 이름 아래 터키를 침공하는 러시아 터키전쟁이 일어납니다. 플레노프는 이 전쟁에 종군화가로

참여 합니다.

모스크바 뒷마당    Moscow Backyard /1878

 

어느 도시건 뒷골목에 가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 사는 냄새는 반듯하게 화장을 하고 있는 큰 길의 얼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쌩얼을 보여주는 뒷골목에 가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건물들도

말쑥한 모습이지만 모스크바의 뒷마당에도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닭의 모이를 주러 나온 아주머니,

풀밭에서 혼자 우는 아이, 놀기에 바빠 동생의 울음 소리로 듣지 못하는 신이 난 아이들 –---  모두 우리 사는

모습입니다. 근사하고 멋진 교회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지만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낡은 집은 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햇빛 가득한 마당 위로 플레노프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찬가가 흐르고 있습니다.

 

다음 해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플레노프는 왕립 아카데미 시절부터 교류를 맺고 있던 화가들과 함께 이동파

전시회에 참가합니다. 이 때 출품한 모스크바 뒷마당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풍경에 서정을 듬뿍 담아 외광파

기법을 이용,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외광파 기법이 러시아 최초로 소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와 죄인    Christ and the Sinner / 1888

 

그때에 예수께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 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타이비어리드 호수가  On the Tiberiad Lake / 1888

 

이스라엘 북부 골란 고원 아래에 있는, 요즘 이름으로는 타이비어리어스 호수입니다. 주변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의 모습이 많이 익숙합니다. 플레노프가 예수님과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림 속 인물은 예수님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우스의 모습에서 가져와 조금씩 변형된 것이죠. 생각해보면 유대 지방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모습은 그림 속

남자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길 옆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습니다. 길은 그 사이로 이어

지겠지만 예수께서 걸어 가신 길도, 우리가 걸어 가야 할 길도 돌이 많은 길인 것은 분명합니다.

 

플레노프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깨끗하고 밝은 색, 색깔이 있는 그림자, 자유로운 붓터치와 같은 기법을

소개했고 이 무렵부터 러시아 회화의 전통에 따라 사실적인 풍경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풍경화를 통해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진 러시아의 시적인 풍경들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기법은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풍경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아브람체보의 가을    Autumn in Abramtsevo / 1890

 

여름은 위대했다고 릴케는 노래했습니다. 위대한 이유는 다가올 계절에 대비해 생명력을 극에 이를 때까지

끌어 올리기 때문이지요. 가을은 그 생명력이 몸 깊숙이 숨는 계절입니다. 한 여름 녹색 범벅이었던 숲에도

생명들이 깊은 곳으로 숨어 들고 있습니다. 더러는 붉게 더러는 노랗게 숨고, 떠난 흔적을 나타내고 있는데

숲을 가득 안고 흐르는 물도 그만 숲을 닮아버렸습니다.

 

1882, 플레노프는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의 제자는 레비탄과 코로빈

처럼 훗날 러시아 미술사의 큰 별이 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플레노프가 러시아에서는 화가이자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으로 높이 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893, 플레노프는 상트 페테르브르크 아카데미의

회원이 됩니다.

바램    Dreams / 1894

 

꿈이 모이면 바램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것은 이상(理想)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광야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습니다. 약한 사람은 끝없이 약해지고 권력을 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잡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림 속 젊은이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사형을 당합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이 역사 속에 한 둘이었겠습니까?

그래도 세상에 대한 그의 바램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고 시간은 지금까지 흘렀지요. 그러나 여전히 바위

위에 젊은이는 오늘도 저렇게 앉아서 세상을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쯤 훌훌 털어

버리고 크게 웃으며 저자 거리로 내려 올 수 있을까요?

 

그림뿐만 아니라 극장의 장식에도 플레노프는 재능을 발휘해서 여러 극장의 개,보수 작업에 참여. 많은 성과를

이룹니다. 그의 여동생 플레노바도 화가였는데, 오랜 기간 명성을 얻은 최초의 러시아 여류 화가였고 도자기,

판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장르에 진출,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니까, 타고난 피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른    Early Snow

 

아직 잎들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렸습니다. 지평선을 건너 온 찬 바람은 미처 떨어지지 못한 잎들을

흔들고 있고 아스라한 지평선은 파란색으로 남아 다가올 겨울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크게 휘어 나가는 강 위로 쌓인 눈은 조만간 강물도 덮을 기세입니다. 겨울은 침묵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침묵해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요. 침묵 뒤에 오는 고요함은 다시 그 뒤를 이을

생명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되거든요.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해, 플레노프는 공화국 인민화가의 칭호를 받습니다. 러시아의 풍경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고 수 많은 제자를 길러낸 그에게 어울리는 영예였겠지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느님의 편애를 받은 것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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