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

백삼/이한백 2014. 7. 8. 10:03

1826년에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는 맨 처음에 고향인 하트포드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1844년에 그는 뉴욕 주의 캐츠킬로 가서, 허드슨 강파()의 창시자인 토머스 의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 허드슨 강파는 허드슨 강 유역을 여행하며 미국 고유의 풍경화법 전통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 그룹을 가리킨다.

콜의 지도를 받아, 처치는 정기적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녔고, 그의 스승이 좋아하는 역사적 풍경화의 장르를 완성했다. 토머스 콜로 받은 영향과 미국의 풍경화 전통에 대한 고수 덕분에 처치는 제2세대 허드슨 강파 미술가들 가운데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1848년에 토머스 콜이 세상을 떠난 후, 처치는 성공적인 풍경화가로서 자리 잡았다. 그는 여름 스케치 여행에서 유화와 펜슬로 작성한 풍경 스케치들을 토대로 해, 나중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훨씬 더 커다란 크기의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드라마틱하고 숭고한 풍경화를 추구했다.

처치는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1853년과 1857년에 총 두 차례에 걸쳐 남아메리카를 여행했다. 처치는 특히 자연 세계에 대한 폰 훔볼트의 디테일한 묘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1880년대까지 이 여행길에서 얻은 방대한 연구 자료와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계속 그려나갔다. 그의 관심과 재능은 대기 효과들의 묘사와 밝은 색채의 사용, 그리고 나뭇잎과 꽃, 식물, 암석 등의 정교한 세부묘사와 장식적인 마무리 등에서 잘 드러난다.

처치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뉴펀들랜드의 풍경들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그가 1857년에 개최한 '나이아가라'전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처치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가 거대한 크기의 <안데스의 심장>(1859)을 뉴욕과 런던에 전시했을 때, 엄청난 대중적 환호가 쏟아졌다. 이 작품은 10,000달러에 판매되었는데 당시 이 금액은 생존해 있는 미국 화가의 작품 가격으로서는 최고가였다.

"처치는 이 세상에서 드로잉을 하기에 가장 민감한 눈을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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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