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나라를 제일 먼저버린 인물 .. 선조와 이승만

백삼/이한백 2014. 5. 13. 13:48

조회 6 |추천 0 |2014.05.13. 12:14 http://cafe.daum.net/musicgarden/5SOR/4523 


임진왜란



[1] 나라를 가장 먼저 포기한 인물이 당시 임금 선조였다.



(1) 임진왜란 때 경북궁, 창경궁 등이 불타서 지금 있는 건물은 원본이 아니라고 .. 왜군이 불질러서 그런줄 알고 있었는데...

그 당시 임금인 선조가 꽁지빠지게 먼저 내빼니깐 백성들이 뿔딱지 나서 불질러 버렸던것을 ...


(2) 믿었던 신립장군의 충주 패전 소식에 패닉 상태에 빠진 선조가 가장 먼저 도주하겠다는 겁니다.

대신들은 통곡하며 반대했다.

이 시점에서는 남은 병사를 모아 한강 교두보를 지켜야 하는데 다 포기하고 도망가겠다니 대신들은 아연실색 했을 것이다.

선조는 반대를 뿌리치고 이틀 후 새벽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궁궐을 나왔다. 임금이 도성을 버리자 한양 일대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2] 나라를 제일 먼저 포기한 인물이 당시 대통령 이승만 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0865&CMPT_CD=P0001
일본 망명정부 구상한 이승만, 선조와 닮았다.


(1) "각하~ 지금 서울을 버리고 떠나시면 안됩니다. 대통령이 피신하면 한국군 병사 전체가 전쟁을 포기합니다"

"내가 북한군에게 잡히면 한국한테 재앙이지.. "

운명의 1950년 6월 25일 밤.

이승만 대통령과 무초 주한 미국대사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즉시 서울을 빠져나가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을 꺽으려고 남의 나라 외교관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무초 대사는 대통령이 적군의 수도 함락을 사수하다 군대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그러나 적군에 잡히지 않을 그 순간까지 머물러 있어 달라고 호소했다.


(2) 끝내 설득은 실패했다.

이승만은 27일 새벽 내각이나 국회에도 알리지 않고 달랑 4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객차 2량만 달린 낡은 3등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가다보니 대구다.
"어~ 너무 내려갔다. 대전으로 돌려라"

대전에 도착한 대통령은 또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인다.

녹음방송을 통해 마치 자신이 서울에 남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서울시민은 물론 국민들 모두 안심하라고 연설했다.

서울로 올라간 녹음테이프는 27일 밤 10시부터 여러 차례 방송되었다.


(3) 최고 지도자가 서울에 남아 '안심하라'고 방송하니 서울시민들은 피난을 가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입소문을 통해 대통령이 서울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정부와 군, 경찰의 고위 관계자들과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일제히 가족과 함께 재산을 챙겨 서울을 탈출했다.

방송 다음날인 6월 28일 새벽 2시 15분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서울 시민 대부분과 국군 주력부대, 많은 군사장비들이 고스란히 한강 북쪽에 남게 되었다.



(4)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3개월 후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서울이 수복되자 군경은 적 치하에 남은 서울시민들을 상대로 검거작전에 나섰다.

시민들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정부로부터 다시 부역, 친공, 북한협력 등의 혐의로 처벌받거나 처형되었다.

그러나, 국민과 정부를 버리고 도망간 이유로 처벌받은 자들은 한명도 없었다.


(5) 다음 해 1월 4일 중국군이 밀고 내려오자 서울시민들은 노약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한번은 속지만 두번은 속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