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꼴찌 인생의 불만

백삼/이한백 2014. 4. 30. 18:31

꼴찌 인생의 불만

 

유 태 경

 

비야 지금쯤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느냐? 내가 이정표가 되어주마. 이곳으로 와라. 혹시나 엉뚱한 곳에서 지구의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 비가 내렸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의 가슴과 산천초목이 불에 타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하던 일을 멈추고 들로 나갔다. 내리쪼이는 태양을 향해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그만큼 태웠으면 좀 쉴 때도 되었건만, 구름과 교대하여 비를 좀 내려달라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하늘에서 쏟았어야 할 비는 엉뚱하게도 얼굴과 몸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 비로는 턱도 없다.

 

논바닥은 거북이 등이 되어 농부들의 한숨 소리는 하늘에서도 들린다.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자라야 할 산천초목은 야속하기만 한 태양이 싫어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마치 땅으로 기어들어갈 자세다.

 

시퍼렇게 흐르던 강이 육지로 변하고 있다. 물속에 사는 생명체들이 보금자리와 음식마저 빼앗겼다. 그나마 자작자작하던 물도 서서히 말라 물고기는 술꾼의 안주가 되어 간다. 얼마 남지 않은 놈들은 이제 발버둥 칠 힘도 없어 배를 하늘로 향해 누워, 살려 달라 입만 벙긋벙긋 하다 죽어간다. 자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지구의 한숨 소리가 허공을 헤매며, 나에게 묻는다. 나는 하늘에 묻는다. 언제부터였는지 하늘은 말이 없다.

 

비를 두려워하는 세상도 있다. 곳곳의 해수욕장에는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4강의 신화였던 축구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나 보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듯싶다.

 

얼음, 아이스크림, 전자 제품 상인들이 하늘을 보며 환한 미소를 보낸다. 자정이 지났건만,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풍악 소리에 하늘도 춤추고 있는 듯싶다. 어느 무도장에서는, 남녀가 한 몸 되어 빙글빙글 돌고 돌다가 어지러웠던지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집도 가정도 없나 보다. 여기저기서 한몸이 되어 크고도 호화스러운 집으로 들어간다. 집들은 없어도 돈은 많이 있는가 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분들의 싸움판을 시도 때도 없이 텔레비전으로 보여준다. 간혹 가슴에 붉은 색깔을 품고 있는 사람도 보이는 듯싶다. 거리에는 벤츠. B. M. W가 날개가 달렸나 보다. 아마도 돈 사냥을 하러 다니는 듯싶다. 골프장에서 날아오른 공은 하늘 높이 날아다니며 불공평한 세상만사를 내려다보다 민망했는지 땅속으로 몸을 숨긴다.

 

이정표를 따라 마침내 비구름이 이곳에 도착하셨나 보다. 하늘에 천사들이 여기저기서 모이더니 드디어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 , , , 만 방울…….

 

줄기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온 세상에 잔치가 벌어졌다. 천둥소리가 부르고 번개가 불을 밝혀 나를 밖으로 끌어낸다. 아직 한낮인데,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오늘따라 일찍 날을 어둡게 하여 허기지고 지친 생명을 일찍 재우시려나 보다. 엄마 품이 이렇게 포근했을까? 답답했던 가슴이 편해지고 마음마저 평화로워진다. 비는 나를 꼭 감싸준다. 지나간 아팠던 추억 때문에 찌든 몸을 닦아주고 온 대지를 깨끗이 씻어준다. 이마에 그려진 세월의 흔적도 씻겨 주리라. 굶주렸던 산천초목이 과음, 과식한다. 논바닥에 거북이 등은 사라지고 몇 마리 남지 않은 물고기는 아직도 힘이 없어 간신히 치는 박수갈채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나뭇가지 위에 까마귀 한 쌍이 몹시 놀란 표정이다. 마실 물도 없어 고생했는데, 별안간 물벼락이 왼 일이냐며 깍 깍 나에게 묻는다. 난들 어찌 알겠는가! 나도 알고 싶은 것을.

 

눈 뜨고 세상을 보기가 버거워 감았었는지, 잠을 잤는지, 아침이 되었다. 끝일 줄 모르는 비는 마침내 지구에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산이 무너져 내려 삶의 터전을 덮치고 인명까지 빼앗아 간다. 육지가 되었던 강들이 화가 났나 보다. 물이 넘쳐흘러 농작물을 덮치고 도시를 쓸어내린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숨 소리에 순찰하고자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흘러내리는 땀인지, 빗물, 콧물, 눈물인지가 뒤섞여 얼굴을 덮어씌운다. 아무것도 보지 말라 한다. 화가 나더라도 참으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울음뿐이고, 한숨뿐이란다. 세월이 약이란다.

 

슬퍼서 우는 사람 뒤에는 즐거워 웃는 세상도 있다. 우산과 우비회사의 얼굴에 미소가 띠고 건설 회사사장의 웃음도 보인다. 분명 우리 주위의 비극이건만 남의 세상일로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이웃 세상에도 엄청난 쓰나미가 덮쳐 슬픔에 함성이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큰 손들이 너도나도 주머니에서 엄청난 액수의 돈을 꺼내 전선에 태워 바다를 건너보내고 있다. 아마도 그 세상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살고 있는가 싶다. 하기는 나도 내 나라 마다하고 100불을 보냈으니 좋은 일을 한 것이리라.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설 곳은 어데 인가? 서울역 지하도에 텐트를 치고 누어 소주병을 기울이는 등산객인 듯한 분들이 행복해 보인다. 동행이라도 하고 싶은데, 나도 끼워줄 수 있는지?

 

우주에 정거장을 만들어 여행은 내일 가도 좋다. 제발 오늘 비바람이라도 적재적소에 공평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술이 더 시급할 것이다.

 

큰 컵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를 가득 부어 단숨에 마셨다. 담배 한 모금을 빨아 후~ 하고 내 뿜었다. 나도 같이 모락모락 날아오르는 연기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