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수월정(水月亭)
노수신(盧守愼)의 적소.
노수신(1515∼1590)은 중종 38년(1543) 과거시험에 합격,
이황과 같이 학문을 연구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관직에서 물러나
명종 2년에 진도 귀양 19년 살다가 51살에 처가 가까운 이곳 산막이 마을로
옮긴 지 2년 만에 선조 즉위 후 다시 관직에 올라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
괴산댐이 완공되면서 수몰 위기의 연하동 수월정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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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수신은 17살(1531년) 때 충주 출신 이연경(李延慶)의 문하생이자 맏사위였다.
충주 처가살이 때의 심정을... 당시 처가살이는 자연스런 현상.
해마다 십이월이 찾아오면
화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고
형제간에 무고함을 기뻐하고
혼정신성 건강하심 경축하였지
나라는 어지럽고 몸은 형극에 있으니
집안소식 또 누가 전해주려나
깊고 깊은 산속에 홀로 앉아서
빈 마음만 북쪽 향해 부모님께 드리네 -<소재집 권1>
# 진도 유배 15년차가 되어서도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자살 충동까지...
내가 이 섬에 들어온 뒤로
몇 번이나 이 글을 썼었던가
한 장 글을 쓸 때마다 온 넋 끊어지니
남은 넋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제 이미 십오년을 지나니
편지를 써본들 어찌 할 건가
…
생각건대 부모님 이 글 받으시면
읽으시고 또 옷깃 적실 것이라
옷깃 적시실 날 언제 그치려나
하늘이 나를 버리기 바라노라
… -<소재집 권4>
# 결혼 16년차에도 아이 없이 생이별한 부인 이 씨의 답시도 가슴을 후벼 판다..
머리 얹고 부부가 되었건마는
소리 삼켜 오래도록 서로 이별하였네
다음 생은 아직 점칠 수 없고
동혈기약은 이미 지키기 어렵게 됐구려
눈물로 편지 젖어 먹이 퍼졌고
줄 삐뚤고 사연들이 어지러웁다
편지받고 혼자 있음 가련해 하니
따를 만한 자식 하나 없어서라네 -<소재집 권1>
# 그는 괴산 적소와 관련된 시는 한 수도 남기지 않았다.
문정왕후가 죽고 소윤(小尹) 윤원형의 실각 등 정국이 크게 변한 결과 자유로운
몸이 되면서 속리산 자락에 은거하던 18년 연장자인 거유 성운(成雲·?∼1528)을 찾아 실로
오래 만에 학문적 토론을 벌인다.
우연히 산음의 흥이 일어
먼 길을 돌아 곡구의 여막을 찾노라
추위가 와도 소나무는 빼어난데
섣달을 끼고 버들은 가늘게 퍼지네
…
어찌 굳이 술을 싣고 물으리오
이미 십년간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는데 -<소재집 권5>
# 물안개가 많고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그의 연하구곡 예찬...
볼그레한 구름이 창가에 비치고
구곡에 아침햇살 비치니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산수이다.(…)
내가 영남으로부터 와서 괴산 동쪽의 산수에 접하여
스스로 樂山樂水라고 했으니
이곳은 군자가 살 곳이다
이곳 연하동은 또한 신선이 별장을 삼은 곳이다. -<이상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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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