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대남라인 핵심 72세 김양건, 김정은 권유로 스키 타다 골절

백삼/이한백 2014. 8. 19. 17:52

@지난해 12월 말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선 군부와 노동당의 나이많은 간부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개장을 며칠 앞두고 이 곳을 찾은 김정은(30) 국방위 제1위원장이 수행한 간부들에게 난데없이 스키를 타보라고 권유한 때문입니다.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터라 그의 말은 그야말로 추상(秋霜) 같았죠.

 스위스 조기유학 시절 다진 김정은의 스키 실력은 수준급이라고 합니다. 60~70대가 대부분인 간부들은 ‘원수님 따라배우기’에 나서야 했죠. 난생 처음 접하는 스키에 곤혹스러웠을 게 분명합니다. 평양 놀이시설인 능라인민유원지에 함께 갔다가 360도 돌아가는 ‘회전매’를 타고 혼절 직전까지 경험했던 데 이은 수난입니다. 결국 당 통일전선부장인 김양건(72) 비서가 스키를 타다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는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김 비서는 몇 달 넘게 공석에 등장하지 못했고 와병설에 해임설까지 나돌았죠. 대북 정보를 다루는 핵심 당국자는 “대남라인이 바뀔 가능성까지 주시했지만, 골절 때문이란 첩보를 통해 권력 내 위상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귀띔했습니다. 정보 당국은 장성택을 처형한 뒤 정국 구상차 백두산으로 향한 김정은을 수행한 핵심간부들에 김양건 비서가 포함된 점에 주목합니다. 대남문제 만큼은 김양건이 상당기간 거머쥐고 나갈 것이란 예고였다는 겁니다. 지난 2월 청와대와 북한 국방위 간 판문점 고위접촉 때 북측 단장으로 나온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 그리고 맹경일 아태부위원장이 바로 김양건 라인의 양대축이란 게 우리 당국의 분석입니다. 17일 개성공단에 나타난 김양건은 조금 살이 빠진 것 말고는 건강해보였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18일)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보내는 화환을 전달하면서 메시지를 읽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고 합니다. 김 제1위원장이 보내는 조의문을 낭독한 것을 볼 때 김양건은 대남문제에서 만큼은 김정은의 대리인임을 과시했죠.

 그런데 김 비서가 이끄는 북한 대남라인의 심기는 불편해보입니다. 그가 화환 전달 때 “무슨 일이 자꾸 생긴다. 남측에서 많은 소리가 나는데 반가운 소리가 없다”고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하소연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쉽지않아 보입니다. 김양건 체제의 대남라인에서는 과거 베테랑 대남통들이 우리 당국을 곤혹스럽게하던 허찌르기와 꼼꼼한 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 평가입니다. 오히려 패착(敗着)을 잇달아 두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4월 개성공단 폐쇄를 섣부르게 결정했다가, 결국 우리 정부와 어렵게 담판을 벌여 재개했던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인천아시안게임 참가문제를 두고도 진퇴양난입니다. 판문점 접촉에선 응원단의 체류비 문제와 관련해 남측이 선뜻 답을 주지않자 “참가문제를 재검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김정은은 아시안게임 참가 축구 선수단의 기량을 검열하겠다면서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참가를 기정사실화 한 행보를 보이자 ‘불참’ 위협카드는 무력화됐습니다. 북측 대남통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대북 감정을 악화시키는 자충수도 빈발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학생들에게 ‘물고기 밥’ 운운하는 망발을 했죠. 며칠 전엔 방한한 교황에게까지 가시돋친 비방을 했습니다. 남한 사회의 여론을 제대로 읽는다면 이런 낙제점 대응을 하지않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사실 남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북한 대남라인의 눈과 판단력이 미덥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10월엔 북한에 비판 성향의 기사를 쓴 우리 언론인들을 겁박하면서 정작 해당 매체와 기자이름이 적잖이 틀려 망신을 샀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는 한승주 당시 외무장관을 비난하면서, 한승수(당시 주미대사)전 총리와 혼동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죠.

 방북취재 때 만난 북한 대남통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결론은 ‘통제 속의 또 다른 통제’ 때문이었습니다. 대남인사들도 남한 정보를 자유롭게 접하지 못하고 보위부 등 공안기관에서 걸러진 극히 제한된 내용만 공급받는다는 거죠. 뒤처지고 부실한 정보가 어수룩한 결과를 초래하는 겁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호전적 대남인식도 이들에겐 큰 부담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최전방 부대를 방문해 “적(敵)들을 수장시켜 버리라”거나 “불바다”, “벌초” 등을 입에 담으니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겁니다. 대남 접근에는 부담이 커지는 거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우리 군 당국의 ‘북한 주적(主敵)’론에 반론을 제기하던 일부 세력을 할 말없게 만들어 버린 것도 어찌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양건 비서는 17일 화환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핵을 버리라고 하면서 어떤걸 하자고 (제안)해서야 되겠냐”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남총책인 김양건이 핵·미사일을 “북과 남, 해외 모든 겨레에게 유다른 축복”(조선중앙통신 8월15일)이라고 한 말이 궤변이란 걸 모를리 없습니다. 또 교황 방문날짜에 맞춘 로켓 발사에 우리 사회가 어떤 눈총을 보낼지는 잘 알 겁니다.

 추모 화환을 받으러 북한 땅으로 달음쳐온 남측 유력인사들을 맞으며 북한의 대남전략가들은 ‘따뜻했던 날’에 대한 향수를 달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김양건 비서가 듣고 싶어하는 방식의 ‘반가운 소리’는 더 이상 없을 지 모르죠. 고위급 접촉 제안에 드레스덴 대북선언 등 남측으로부터 받아놓은 숙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북한 대남라인도 이제 국제정세와 새로운 남북관계에 맞는 변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와도 대립각만 세우다가는 ‘잃어버린 10년’ 타령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영종 기자

사진설명 1. 흙먼지 뒤집어쓴 김정은 벤츠 김정은의 평남 연풍과학자휴양소 건설장 방문을 전한 18일자 노동신문 사진에 흙먼지 쓴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가 등장했다. ‘현장을 챙기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외에도 20억원 넘는 같은 브랜드의 S600 풀만가드 리무진을 애용한다. [노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