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이 남긴 경북 안동 도산서당 |
이런 대학자의 걸작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작아서 훌륭한 집’이 퇴계 이황이 남긴 경북 안동 도산서당(작은 사진)이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는 성리학을 가르치는 서원 짓기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은 정말 작은 거처 겸 교실이었던 도산서당과 학생들 숙소였던 농운정사였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퇴계가 세상을 떠난 뒤 후학들이 그를 기려 퇴계의 건물들 주변에 여러 건물을 지어 만든 것이다.
특히 퇴계가 쉰일곱에 짓기 시작해 예순에 완공한 도산서당은
엄밀히 4.5칸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작은 집 구조인 3칸짜리 미니 건물이다.
옛 1000원짜리 지폐 그림으로 친숙한 이 집은
건축의 고수였던 퇴계의 높은 수준과 깊은 생각을 보여주는 명작으로 꼽힌다
조선의 대유학자들은 건축의 대가들이기도 했다.
학자들이 자기 집과 공부 공간을 자기 철학에 맞게 직접 구상해 짓는 것은 조선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경지가 높은 대학자들일수록 말년에 작고 소박한 집을 남겼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다산초당이나 송시열의 남간정사가 대표적이다.
크고 웅장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덜어내고 본질적 요소만 남긴 최소한의 집,
그래서 더 깊이 생각을 담아내는 집을 인생 말년기에 지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집이란 작을수록 설계하기 어렵고,
작은 집에서 철학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건축의 진리임을 조선 대유학자들의 작은 집들이 보여주는 것이다.
작아서 훌륭한 "퇴계의 집"을 현대건축으로 다시 시도하다
작은 집의 가치를 역설해온 부부 건축가 임형남(51), 노은주(42)씨가 최근 설계한 금산주택(큰 사진)은
이 도산서당을 현대건축으로 다시 시도한 일자형 집이다.
도산서당의 정신과 형태를 계승해 변하지 않는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집은 작아도 외국 유명 건축전문지인 <아키넷>과 <아키데일리>, <디자인 붐> 등에 연이어 소개되었을 만큼 주목받고 있다.
금산주택은 전통 한옥과 다른 서양식 경골목 구조 방식으로 지었지만
그 형태는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그리고 반듯한 네모 집만으로 구성된 도산서당을 그대로 빼닮았다.
구조 역시 공부방과 제자를 가르치는 마루, 부엌과 작은 서재로 이뤄진 도산서당과 같다.
칸 구성 역시 똑같이 4.5칸이다.
도산서당보다는 커도 마루 26㎡(8평)를 포함해 모두 43㎡(21평)인 작고 단순한 집이다.
높은 층고를 이용해 방 위에는 서재가 되는 작은 다락방을 앙증맞게 올렸다.
건축가는 대안교육에 몸담고 있는 건축주 부부와 오랫동안 상담해 원래 40평 정도로
지으려던 집을 오히려 절반 크기로 줄이면서 도산서당을 닮은 집을 짓기로 했다.
집터에서 바라보이는 진악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집,
건축주가 교육계에 있는 점을 고려해 교사와 학생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마루가 큼직한 집,
부부가 노후를 보내기에 알맞게 작은 집으로 방향을 정했다.
공사비는 마당 데크공사까지 포함해 1억원 정도인 소박한 집이 한달 반 만에 완성됐다.
화려한 디자인이나 고급스런 장식도 없이 가장 간단한 형태와 지붕만으로 디자인이 완성되고,
소박한 집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퇴계의 도산서당 같은 집이다.
임형남·노은주씨는 “퇴계의 도산서당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경(敬) 사상을 바탕으로 삼아 단순함과 실용성, 합리성을 추구한 집이자
높은 경지의 생각을 담은 집이란 점에서 건축가로서 늘 꿈꾸었던 집이었다” 며
“건축주 자신의 현재와 책이라는 과거와 찾아오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었던 도산서당에 바치는 경건한 오마주”
라고 설명했다.
작은 집의 가치를 역설해온 부부 건축가 임형남(51), 노은주(42)씨가 최근 설계한 금산주택
지난 가을부터 진악산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오연히 솟아오른 땅을 하나 만났다
집 안팎으로 자연과 사람이 서로 싸우지않고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었으면 했다.
비록 지역에서 가장 시공이 용이한 서양식 목조주택의 구법을 썼지만
전통 한옥 공간의 장점을 끌어들여 우리 시대의 한옥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하고자 했다.
방 하나의 8평 집에서 시작된 구성이 방 하나와 다락방을 늘려 13평의 집이 되었다.
사람은.. 넓은 대청에 앉아 집과 자연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
최 선생님의 생활이 어떻게 저 큰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
설계의 가장 큰 숙제는 저 큰 산을 어떻게 품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인가.
야외 목욕장에서 진악산을 엿보다
문을 열면 하나로 연결되는 금산주택 내부 모습. |
이 집에서 비로소 '공간'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최 선생님의 말씀에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규모는 가장 작았지만 마음은 가장 흡족했던 프로젝트이다.